총리도 세 들어 평화롭게 산다는 베를린에 가면, 갑갑한 한국 주택시장에 대한 한 줌의 아이디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독일에 다녀왔다. 며칠간 직접 보고 들은 것 중에서 예상과 일치한 것은 거의 없었다. 베를린도 몇 년 새 폭등한 집값에 허덕이고 있었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주택정책에서 크게 실패했다는 점에선 오히려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이 점 빼고는 다 달랐다.
10년 넘게 주택정책에 집중하고 있는 베를린 시 의원을 만났다. 베를린주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 안드레아스 오토(Andreas Otto) 의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심은 복잡하고 인구밀집이 높은 게 당연하다. 도심에서 적당한 가격에 마당이 넓은 전원주택이 필요하다고? 그렇다면 교외로 나가시라."
베를린에는 주거와 상업용 기능이 절묘하게 혼합된 '하케셔 회페'라는 건축물군이 있다. 다비트 캐스트너 씨는 이 건물군을 관리하는 부동산자산관리사 대표다. 공공의 간섭을 일체 배제하고, 기업에 자율권을 보장하라는 그는 철저한 시장경제주의자였다. 그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만 부동산 기업이라면 지속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 부동산은 사람이 드나드는 사업이다. 단기·최대이익만을 추구하다간 망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성향의 스펙트럼에서 정반대의 인물을 연이어 만난 셈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도심에서의 용적률 상향은 불가피하다는 좌파성향 의원과 당장의 이익만 좇다간 패망밖엔 없다는 우파성향의 기업가. 주어를 바꿔도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할 법한 생각과 언어를 배척하기보다는, 서로의 공통분모로 남겨두고 있었다.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언제든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는 듯했다. 독일의 연립정치가 왜 가능한지,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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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상대방을 악마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당은 모든 부동산 문제를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린다. 야당은 지금의 모든 문제가 올해 5월 21일(현 정부 출범일)부터 시작된 듯 행동하고 있다. 임대인은 임차인을 ‘벼락거지’라 조롱하고, 임차인은 ‘투기꾼들 죄다 망해라’며 저주한다. 이들 사이에 끼어들 공간은 없다. 네가 하면 맞는 말도 틀린 말이 되고, 내가 하면 틀린 말도 맞는 말이 된다. 한국부동산 시장에 수입이 시급한 것은 독일의 주택정책이 아니라, 독일식 대화와 타협의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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