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골프 세계 정상급 성장 功 불구
주인인 '회원'들의 목소리에 귀 닫아
변화의 용기 없으면 존립 가치 상실
1978년 한국골프협회(KPGA) 내에 ‘여자프로골프부’가 신설됐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토대다. 그해 치러진 첫 여자 프로테스트 합격 1호는 강춘자 선수였다. 그는 1979년 삼양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통산 14승을 거뒀다. 척박했던 여자 프로골프의 개척자인 셈이다. 1956년생으로 한국 여자 골프계의 전설로 불리는 고(故) 구옥희 선수와는 동갑내기다. 선수 은퇴 후에는 행정가로 변신했다. 그는 KLPGA 부회장으로만 21년, 자회사인 KLPGT 대표만 11년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 강 대표가 최근 골프계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최근 중계권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가 발단이다. 30년 넘는 장기 집권 과정의 폐해를 주장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실 한국 여자 골프의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절대 작지 않다. 세계 무대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었던 KLPGA의 위상을 높인 장본인이다. 그 사이 KLPGA는 이름 없던 변방의 로컬 투어에서 탈피,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유럽여자프로골프(LET)와 함께 사실상 세계 3대 투어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LPGA 통산 200승 기록을 달성하며 세계 여자 골프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 때문에 단지 장기집권했다는 것 자체가 논란의 본질이 되어선 곤란하다. 이는 역으로 그동안 그를 대체할 만한 골프 행정가가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논란의 본질은 그를 중심으로 한 KLPGA 체제가 미래의 한국 여자 골프에도 바람직한가 여부다. 그런 점에서 최근 협회와 강 대표가 보여준 모습은 이 질문의 답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KLPGA 투어 중계권 사업자 선정 문제로 국정감사 증인석에 선 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우선협상대상자보다 더 높은 입찰 금액을 써낸 것은 물론 선수들을 위한 연금기금 조성 조건까지 제시한 업체를 탈락시킨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이후의 행보도 논란거리다. 이달 20일 오후 협회가 개최한 ‘KLPGA투어 선수 세미나’에서 강 대표와 협회 측은 무성의한 태도로 선수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70여분간 진행된 이 날 세미나에서 강 대표가 중계권 사업자 선정에 관해 설명한 시간은 단 1분. 그것도 자발적이었다기보다는 선수들의 요청에 못 이긴 것이었다. 답변 역시 단순히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그렇게 믿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일방적인 얘기가 전부였다.
강 대표와 협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협회는 이익단체다. 그리고 그 이익은 곧 회원들의 몫이어야 한다. 행정가로 그가 쌓았던 수많은 공 역시 후배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일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오해를 키운 것 역시 회원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내가 옳다"며 소통에 등 돌린 협회 운영진들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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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는 지금 위기다. 여전히 수준급 실력을 갖춘 젊은 선수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지만, 경쟁이 만만찮다. 아타야 티띠꾼이라는 대형 스타를 키워낸 태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일본의 약진도 만만찮다. 도전 앞에 선 한국 여자프로골프 행정에는 변화를 수용하고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그럴 용기가 없다면 현 체제의 KLPGA는 생명력이 다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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