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최근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그동안 중소기업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증폭되고 있다. 해당 연구기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납품단가를 원자재가격에 연동하여 위험을 분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거래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으나, 이를 의무화한다면 효율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원사업자가 이를 회피하는 전략을 쓴다면 정책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고 오히려 수급사업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가격 규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2009년 하도급법 개정 당시에도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검토한 바 있으나 당사자 간 조정과 협의를 전제로 납품단가조정협의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특성에 맞게 원자재가격 변동에 따라 조정·협의할 수 있도록 납품단가조정협의제를 의무화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납품단가조정협의제는 납품단가 인상 의무를 부과한 것이 아니라 단지 조정협의 의무를 부과한 것인데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교섭력에서 차이가 있어 수탁기업(중소기업)이 위탁기업(대기업)에 납품단가 조정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불합리한 거래 관행은 시장경제 원리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주요 원자재 공급기업은 대기업이다. 이들은 원자재 가격이 변동하면 즉각적으로 공급가격에 반영한다. 이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것으로 이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원자재를 구매·가공해서 부품이나 소재를 대기업 혹은 수요기업에 납품하는 구조인데 여기서 납품단가를 조정해 주지 않으면 중소기업이 고스란히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 분담의 비가역성으로 인해 중소기업은 공급과 수요 양측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비정상적인 구조에 놓이게 됐다.
거래당사자가 납품단가 조정을 계약서에 명문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조정이 어려운 것은 대기업의 교섭력 남용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조정, 아니 인하 요구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대더라도 을의 위치에 있는 수탁기업이 갑에게 단가 조정을 요구하는 것은 거래관계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율적인 조정과 협의를 통해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납품단가를 조정해야 함에도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논의는 기존 불공정한 거래 관행 때문에 촉발된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가 납품단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당사자가 합의를 통해 계약서에 납품단가 조정항목을 넣고 어떤 조건에 따라 조정할 것인지를 미리 특약으로 정해 놓는 것이 납품단가연동제다. 이 특약에 따라 어떠한 조건이 발생하게 되면 단가 조정을 하게 된다. 특약에는 주요 원자재 변동률, 변동주기, 기준지표 등이 일정 비율 이상으로 변동하게 되면 계약에 따라 자동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게 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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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단가는 정부 개입에 앞서 자율적인 조정과 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대기업은 시장원리를 앞세워 자율적인 조정과 협의를 피해 가곤 했다. 가격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과 같이 원가 변동의 리스크를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거래 관행은 공정하지 않다. 시장원리를 앞세워 납품단가연동제를 반대하는 측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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