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정치의 목적은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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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파라는 표현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문학작품의 창작에 있어서 사상이나 감정의 표현보다 형식이나 기교를 중시하는 작가들을 뜻한다. 문학 말고도 음악이나 미술에도 기교파로 분류되는 작가들이 있다. 대중음악에서 예를 들자면 속주 기타리스트들이 있겠다. ‘잉베이 말름스틴’으로 대표되는 속수 기타리스트들의 본령은 더 빨리 더 화려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데 있었다. 80년대에는 이런 기타리스트들이 연주만으로 앨범을 내기도 했고, 일반 팝/록 노래 중간에도 기타 솔로 뽐내기 구간이 종종 들어가 있었다.


이런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오곤 했다. 우와 기타 진짜 잘 친다! 그러나 그뿐이다. 필자도 한때 기교파 연주자들에게 열광해 앨범을 모으고 실황 연주를 찾아 듣던 시절이 있었는데, 혀를 내두르며 감탄할지언정 감동을 얻은 적은 별로 없었다. 연주 실력 그 자체만으로는 좋은 음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드림씨어터’의 몇몇 명반들처럼 초절기교를 뽐내면서도 감동을 주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체로 필자를 눈물짓게 만든 명곡들은 대단한 연주력을 과시하는 곡들이 아니었다.

정치권에도 기교파 정치인들이 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소위 정치공학적 계산에 능한 이들 말이다. 물론 정치신인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최소한의 정치적 기교가 요구된다. 음악가들에게 어느 정도의 연주 실력이 필수인 것처럼. 그러나 기교는 연주의 목적도 아니고 정치의 목적도 아니다.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인 목적이 필요하다.


군부정권 하에서는 민주화라는 거대하고 공통적인 목적이 있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는 빌 클린턴의 선거 캠페인처럼 경제를 정치의 중심에 두는 경향이 이어졌다.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도, 언론인 출신도, 심지어 의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정치인들도 저마다 자기가 경제전문가라며 경제정책을 늘어놓곤 했다. 그들이 하도 뻔뻔하게 굴다 보니 국민도 어이가 없어 속아주기도 하고 둔감해지고 뭐 그랬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100일이 지났다. 전 정부를 부정하고 선거에 이기는 데는 성공했는데 막상 정권을 잡으니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인플레와 치솟는 환율에 대처하느라 바쁘다고? 그건 어디까지나 경제부처의 일이다. 전 정부에서 정치인들이 부동산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며 덤비다가 시장만 더 어지럽힌 실패를 잊지 말기를. 정치인이 어설프게 경제정책에 간섭하면 안 된다. 선거 때 경제전문가인 척하는 정도는 눈감아 줄 테니 거기까지만 하자.


정부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로 역할을 해야 할 여당 대표는 황당하게도 자신의 당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앞에서 말한 기교파 정치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현란한 비유와 다양한 작전으로 정치적 투쟁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는 사람은 있지만 감동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적어도 필자는 감동은커녕 피곤하다. 정신없는 기타 연주를 너무 오래 들은 기분이랄까.


기교파 정치인들에게 부탁드린다. 정치꾼으로 전락하기 전에 당신이 정치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해보라고. 그저 선거에 이기고 추종자들을 모으고 권력을 잡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제 연주를 멈춰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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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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