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케이콘 2022 LA(KCON 2022 LA)'가 개최되는 미국 LA 크립토닷컴 아레나 공연장 앞에 현지 팬들이 줄을 서 있다.

20일(현지시간) '케이콘 2022 LA(KCON 2022 LA)'가 개최되는 미국 LA 크립토닷컴 아레나 공연장 앞에 현지 팬들이 줄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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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제법 긴 시간이 지났지만 '동방신기’에게 고마운 것이 참 많다는 중년 한인 부부를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동방신기는 미국 이민 1세대인 이들이 이름을 외우는 몇 안되는 K팝 아이돌 그룹이다.


서툰 영어로 낯선 타국 땅을 밟은 이들의 이민 초기 생활은 말 그대로 치열했다. 그렇게 10여년, 어느 정도 숨 쉴 여유가 생기고 나니 그 때부터는 둘째 딸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갓난아기 때 미국행 비행기를 탄 둘째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해 부부와 대화 자체가 적었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들어선 후부터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이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10여년 전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 이민 1세대와 이민 1.5~2세대를 구분했던 ‘학(鶴) 다리’와 ‘바나나’가 딱 이들의 이야기였다. 부부는 한 발만 미국 땅에 딛고 먼 한국만 바라보고 있었고, 둘째는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얀 바나나처럼 내면은 백인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부턴 지도 모를 정도로 쌓여온 갈등인 데다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언어 장벽마저 높아진 탓에, 마주치기만 하면 짧은 언성만 오가는 일이 반복됐다. 부부는 “대화란 게 이뤄질 수 없었다. 3년 정도는 전쟁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평화는 갑작스레, 생각하지 않은 방향에서 찾아왔다. 오랜만에 둘째가 서툰 한국어로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나 한국어, 빨리 할 수 있어?” 그리고 몇 주 뒤, 이웃들을 통해 둘째가 동방신기의 팬이 됐고 한인 교회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벌써 17년이 지난 이야기다. 미국에 부임한 이후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K팝·K드라마의 높은 인기, 문화의 힘을 크게 체감하게 된다는 말에, 부부는 학 다리 같던 그들과 바나나 같던 둘째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똑바로 바라보게 된 시작점으로 동방신기를 언급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둘째는 K팝을 사랑하고, K드라마와 K영화를 즐겨 보고, 스스로를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라고 말한다. 동방신기로 시작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모님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이어졌다고 그 또한 말했다.


이들을 만난 건 미국 LA에서 10주년을 맞은 대규모 K팝 콘서트 ‘케이콘 2022 LA(KCON 2022 LA)’가 개최되는 것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그리고 직후인 20일(현지시간) LA 현장에서 처음으로 K팝의 인기를 마주했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1만5000명의 관중이 가득 찬 공연장의 떼창이 어느 정도로 컸느냐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소프트파워가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 됐다는 확실한 사실이었다. K팝 아티스트에 대한 현지 팬들의 관심은 단지 그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화장품과 제품들을 사용하고, 한국 음식을 즐긴다.


공연장에서 인터뷰한 10여명의 현지 K팝팬들은 최근 즐겨보는 한국 드라마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손꼽았다.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LA를 찾은 10대 소녀 노미 양은 '최애 드라마'를 묻자, 문가영, 차은우 등 출연진의 이름을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플로리다에서 온 한 커플은 이미 올해만 4번째 K팝 콘서트라고 했다. 트와이스, BTS, 스트레이키즈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미 LA, 라스베이거스, 뉴욕을 다녀왔다. 에이티즈의 북미투어 티셔츠를 입은 니키 씨는 "K팝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했다"며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유럽 내 한국학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라몬 파체코 파르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교수는 대중 음악을 앞세운 문화의 힘으로 한국이 강국 사이에 끼인 ‘새우’에서 ‘고래’가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한국이 전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자 기술 강국, 문화 강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시 우리가 새우가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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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예술의 역사에서 결국 유행은 언젠가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1980~1990년대 열풍같던 홍콩 영화의 인기가 짧은 옛기억이 된 것처럼 말이다. 무작정 한류가 끝없이 전 세계로 흐르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는 스스로 안주하는 순간 후퇴할 수밖에 없다. 왜 K팝인가, 왜 K컬쳐인가. 여기서 출발하는 지금 우리의 고민이 결국 진짜 문화강국의 길로 이어질 것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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