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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공매도와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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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 평균 타수 90개와 100개를 치는 주말 골퍼가 타당 1000원 짜리 내기를 한다. 이 경우 90을 치는 쪽이 100을 치는 쪽에 1만원을 미리 준다. 평균적으로 10타를 이기는 쪽이 그것을 감안해 10타 치 돈을 미리 주는 것이다. 매우 합리적이고 공정해 보이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런 게임에는 ‘배판’이라는 변수가 있다. 총 18홀 중 최소 4홀에서 10홀 정도까지는 타당 2000원이 되는 배판이 있다면 이 게임은 공정할까.


공매도 논쟁이 뜨겁다. 한국투자증권이 공매도 표시를 하지 않고 공매도를 한 사실로 10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실(7월26일 본지 단독 보도)이 알려진 후 대통령까지 나서 불법 공매도를 엄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이 나서자 당국의 대응도 전광석화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김근익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이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열고 '불법 공매도 적발·처벌 강화 및 공매도 관련 제도 보완방안'을 논의했다.

회의 후 정부는 현행 140%인 개인투자자의 담보비율을 120%로 낮추고, 전문투자자 요건을 충족하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상환기간 제약이 없는 대차거래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국내 기관과 외국인의 담보비율이 105~12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키높이를 맞춘 셈이다.


나름 공정한 개선책인 것 같은데 개인투자자들은 의외로 강하게 반발했다. 개인투자자 5만명 이상이 가입돼 있다는 한국투자자연합회의 정의정 대표는 “담보비율을 낮춘다고 자본과 정보가 부족한 개인이 얼마나 더 공매도에 나설 것이며 어떤 이익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공매도를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는 입장에서도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몇 해 전 백억원대의 주식을 운용하는 개인투자자와 공매도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이 투자자는 공매도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외국인이나 기관과 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정부 개선안과 싱크로율 100%다. 당시에도 고개를 끄덕였었다(황희 정승도 아니고).

현재 개인의 공매도 비중은 2% 남짓이며 98%가 외국인과 기관이다. 아마 공매도를 하는 개인들은 ‘슈퍼개미’급이거나 아주 공격적인 전업투자자일 것이다. 900만명을 넘어 1000만명에 육박하는 개인투자자 중 많아야 1~2% 남짓일 게다. 지금까지 전업투자자를 제외하고 공매도를 해봤다는 투자자를 만난 적이 없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그 근거가 미약할지라도)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솔깃해지는 수준이다. 개인투자자에게도 공정한 기회 부여라는 개선안이 정부가 기대했던 대다수 개인들의 호응을 받기 어려운 이유다.


자본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 100억원을 가진 사람과 100만원을 가진 사람이 같은 '룰'로 게임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관리·감독하는 정부가 할 일은 100만원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응원이 아니라 동일한 잣대로 적용되는 룰을 만들고 누구든 그 룰을 엄격히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 증권사들의 공매도 룰 위반 이후 외국계 증권사들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위반 사실(8월2일 본지 단독 보도)도 밝혀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반칙까지 횡행하면 곤란하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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