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해일 "이순신 장군役, 서 있는 것도 부끄러웠어요"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役 박해일
붓 들고 활 쏘는 무인
김한민 감독, 징비록서 떠올린 캐스팅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영명한 눈빛이 마치 선비와 같았다. 징비록(류성룡著)은 장수 이순신을 이같이 묘사했다. 김한민 감독은 이를 보고 배우 박해일(45)을 떠올렸다고 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은 그렇게 태동했다. 지장(智將) 이순신은 박해일과 발에 맞는 신발처럼 꼭 맞았다. '명량'(2014)에서 최민식이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힘 있게 이순신을 표현했다면, 박해일은 고요한 바다처럼 온화하고 강직한 얼굴을 드러낸다.
박해일이 연기하는 이순신은 기존 미디어에서 접해온 모습과 달라 이채롭다. 굳건한 신념과 지혜로운 성정을 지닌 조선 최고의 장군이자 바다를 지키는 전라좌수사로의 모습을 부각했다. 붓도 들고 활도 쏘는 무인이자 장수. 어떤 상황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띈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시대마다 이순신 장군을 표현하는 톤이 미세하게 다르다"며 "무인이지만 붓도 잘 어울리는 군자, 무인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산: 용의 출현'은 명량해전 5년 전, 진군 중인 왜군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전략과 패기로 뭉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해전을 그린다. 최다 관객수 1761만명을 모은 '명량'(2014)의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3부작으로 선보이는 두 번째 작품이다. 박해일과 김 감독은 '극락도 살인사건'(2007)·최종병기 활'(2011) 이어 3번째 만남이다.
이순신의 어떤 모습이 스크린에 펼쳐질까. '명량'에서 그려진 용장(勇將)의 면모와 차이가 있다. 박해일은 "감독님이 지략가 면모를 보여주길 바랐고, 지혜롭게 수군들과 함께 전투에서 승리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그 부분에서 제가 어울리겠다고 한마디 해주셨는데, 마음이 편해졌다. 붓과 활이 잘 어울리는 장군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해일은 이순신을 단지 멋지고 용렬한 장수의 모습으로 '치장'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한 기운을 드러낼수록 제가 부족해 보일 거라고 봤다. 그런 모습이라면 어울리는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게 적합하지 않나 생각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그분의 진심이 무엇일까 찾았다. 최대한 느끼고, 느끼는 만큼 표현하려 했다."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일정 시간을 두고 계속 만들어져 왔잖아요. 시대마다 바라보는 느낌도 다르고요. 이야기할 것들, 현재 되새겨야 할 부분이 많은 위인이죠. 시대를 비추는 게 아닐까요. '한산'에서는 붓도 잘 어울리는 군자이면서 무인의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싶었죠. 드라마의 시작부터 세밀한 전략이 필요했죠. 혼자 있을 때의 시간에서 뚜렷해야 이후 면모들이 표현되리라 봤죠. 그래서 차분하게 캐릭터를 대했어요. 실제 장군님이 말수가 적고 희로애락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셨죠.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는 모습까지 일관되게 가져갔습니다."
위인 이순신을 연기하는 부담감도 엄청났을 터. 실제 역사적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인물을 재해석해 창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해일은 "최민식 선배가 '숨이 막혔다'고 했는데 저는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여수 오픈세트에서 촬영했는데 배 위의 지휘 공간에 올라서 보면 모든 게 다 보인다. 전후좌우에 있는 스태프, 배우들이 저만 보고 있더라. 심지어 주민들까지도. 그 부담은 실로 말할 수 없다. 한국인 모두가 아는 위인을 연기한다고 하니. 서 있는 것조차 부끄럽고 힘들었다."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어요. 연기를 하되 안 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고요, 감정적으로도 그랬죠. 지방에서 장기간 촬영했는데, 숙소에서 혼자 있을 때도 양반다리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시나리오를 보고 커피를 마실 정도였어요. 일상에서 그런 기운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장군님의 기운을 털어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어요. 최민식, 김윤석(노량) 선배는 어떤 방식으로 떠나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촬영장에서 모든 기운을 다 소진하셨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웃음)."
세트장에서 구현된 거북선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던 박해일은 "짠했다"고 말했다. "80~90% 정도 완성된 거북선을 보고 할머니 산소를 둘러싸던 한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달까. 그 기운이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죠. 이순신과 늘 함께해온 관계이고 실제 전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죠. 조선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졌습니다."
올해는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이 430주년 되는 해이다. 박해일은 430년 전 위대한 리더였던 이순신이 지금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기운이 느껴지지 않나요. 시대마다 느껴지는 테마는 조금씩 다르지만 동일시 여겨지는 건 화합이에요.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 위인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죠. 큰일을 앞둔 국민들이 통영에 있는 제승당에서 결단의 기운을 받으면서 의지하는 존재이죠. 시원한 액션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도 날리시면서 역사적인 면의 비수 같은 비장함이나 진지함도 느끼시길 바랍니다."
박해일은 "저를 포함해 이 땅에 태어난 모든 분이 선조들의 기질과 DNA(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역사가 그래서 대단하고 계속 다뤄지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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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역사가 조선에 얼마나 있었을까요. 영화는 세계 해전사에 손꼽을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자긍심'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외치시는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부분이죠. 다른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태도를 비치고 있으니까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픔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승리의 역사까지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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