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한때, (국립교향악단) 지휘자가 되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다. 학비조차 변변히 내지 못했던, 그래 졸업마저도 여섯 분의 선생이 모아 당사자 몰래 시켜주었던 빈한한 가정형편이 아니었다면, 평소 존경해마지 않았던 음악 선생의 “음악은 취미로 하는 게 좋지 않겠니?”라는 조언이 아니었다면, 그 꿈은 그 이후로도 한층 더 오래 지속됐을 게 틀림없다. 어느 방학 중에는 소위 ‘고전 음악’을 종일 들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곡을 외울 정도의 ‘클래식 애호가’였으니 말이다.
이렇듯 내 클래식 사랑은 50년 가까이 계속돼왔다. 영화 보기나 독서 못지않은 긴 세월을 함께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결정적 계기는 대체 뭐였을까? 돌이켜보건대 그것은 중학 시절 어느 날, 흑백 텔레비전에서 20대 중반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 사라사테의 그 유명한 치고이너바이젠(집시의 노래)을 연주하는 모습을 우연찮게 보게 된 것, 아니었나 싶다. 그 체험은 단언컨대 미래의 영화평론가를 클래식 세계로 풍덩 빠트린, 일생일대의 축복 어린 대사건이었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고전음악의 대중화와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던 “우리 음악계의 둘도 없는 보석 같은 존재이자 명실상부한 우리 음악계의 큰어머니”요, 전성기 적엔 “학구적이고 내실 있는 곡 해석과 뛰어난 기량의 다이내믹한 연주로 국내 음악계의 정상이었고, 대학에 적을 두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최고의 스승”으로 “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 1993년부터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며” 클라라 주미 강 같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제자로 길러낸 김남윤의 명품 연주가 선사했던 그 전환점적 울림·여운을.
그 이후 김남윤은 내게는 클래식, 특히 바이올린 그 자체였다. 그만큼 그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국제적 지명도 등에서는 그녀를 압도하는 정경화를 비롯해 김민, 김영욱, 강동석 등 이 땅의 대표적 바이올리니스트들 뿐아니라 바이올린 역사의 대명사라 할 수 있을 니콜로 파가니니나, 야샤 하이페츠, 핀커스 주커만, 이차크 펄만, 기돈 크레머, 안네 조피 무터 같은 20세기 세계 최고 바이올린주자 중 그 누구도 어릴 적 맛봤던 그 임팩트를 대체한 이는 없었다. 2020년 6월10일 부산의 ‘금정문화회관 개관 20돌 & 베토벤 탄생 250주년 Dear 베토벤! 운명’에서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한수진과 조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한수진은 예술감독 오충근이 지휘한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내게, 김남윤의 그때 그 연주 못잖은, 터닝포인트적 감흥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영락없이 ‘포스트-김남윤’이었다. 그날 그 연주의 맛과 멋은 2021년 3월2일부터 17일까지 금정구(구청장 정미영) 금정문화회관(관장 강창일)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클래식음악제(BCMF) 개막 공연에서도 재연됐다.
1986년 생 범띠인 한수진은 2001년 15세의 어린 나이로, 사라사테 · 파가니니 · 요아힘 등과 함께 19세기 음악계를 수놓았던 폴란드 출신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를 기리기 위해 창설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 최연소 참가해 한국인 최초로 2위에 입상한 스타 바이올리니스트다. 한수진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명 작곡가이자 반도네온연주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초연으로 연주했다. 일찍이 어느 원고에서도 피력했듯, “대가(Virtuoso)적 기량·면모를 유감없이 뽐내며 음악 콘서트는 물론 클래식의 진수를 청중에게 듬뿍 안겨줬다. 마치 BCMF의 성공을 공개적으로 선언이라도 하는 양….”
상기 원고에서 난 이렇게 총평했다. 유튜브를 통해 다른 연주자들과 비교·감상을 해보면, 그 곡을 세계적으로 알린 주인공이었다는 기돈 크레머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한수진의 그 강렬하고 깊은 협연의 맛에 필적할 수 없다고. 공연전문가인 김동언 경희대 교수는 나보다 한층 더 정교하게 평했다. “연주자의 자세,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 정경화를 넘어서는 에너지 그러나 정제된, 장엄한 서사를 풀어 드라마로 만드는 장쾌한 스타일, 미분음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할 줄 아는 섬세한 감성과 표현력,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완벽한 호흡과 앙상블은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주면서 인간적인 성숙미까지 물씬 풍겨주었다.”
김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020년의 첫 만남 이후 한수진은 내게 한국 최강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리하고 있다. 주관적 편애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어도 진심이다. 클라라 주미 강은 말할 것 없고 김다미, 김봄소리, 윤소영 등 여타 발군의 30대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비교하진 않으련다. 한계가 명확한 유튜브 영상의 치고이너바이젠 연주로 판단해봐도, 최강이라고 여겨지는 야샤 하이페츠나 이차크 펄만에 견줄 수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그녀의 연주를 맛보기 위해 부산이건 서울(예술의 전당)이건 인천(아트센터 인천)이건 기회 닿는 대로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는 15일 저녁에는 아트센터 인천을 찾아가, (‘2022 예술의 전당 교향악축제’ 중 4월14일 공연될 서울시향과의 공연 앙코르인) ‘2022 서울시향과 한수진 초청연주회’를 즐길 계획이다. 협주곡은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이다. 한수진의 인생곡으로 “기쁜 순간과 가장 힘든 시점들에 늘 함께했고 처음으로 음악을 들으며 전율을 느끼게 한 첫사랑이자 오랜 친구 같은 소중한 곡”이다.
나는 확신한다. 한수진의 기량은 말 그대로 압권인바, 늘 그랬듯 최상의 완성도로 최상의 만족도를 만끽시켜 주리라는 것을. 단언컨대 ‘명청허전’이요 ‘명불허전’이리라. 직접 확인해보지 않겠는가. 지휘로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인 마로코 레토냐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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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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