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초보가 강대국 자극" 해외 정상 비난한 대선 후보들…문제 없나
후보들, 토론서 '젤렌스키' 비판 발언
"이게 한국 대통령 후보냐" 국내·외서 비판 봇물
美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까지 공유돼
전문가 "국제 사회가 한국에 거는 기대 커"
"정치권, 한반도 문제 넘어 글로벌 외교 논의해야"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우크라이나에서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러시아를 자극해 결국 충돌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우크라이나가 신속히 나토(NATO)에 가입했어야 했다"(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최근 여야 양당 대선 후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해 한 발언들이다. 러시아군의 수도 키예프 점령 시도를 막기 위해 직접 전선으로 내려가 싸우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미리 가입했어야 했다는 '훈수'도 있었다.
이같은 후보들의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 등을 원조하거나, 대(對) 러시아 경제 제재에 참여하고 있는 서방 국가 누리꾼들은 직접 후보들을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정치에만 신경 쓰느라 대외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실언들이 외교적 결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보 대통령", "NATO 가입했어야"…안보 토론 중 나온 우크라이나 비판
이재명 후보는 지난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2차 외교·안보 분야 토론회에서 "우크라이나에서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NATO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충돌한 것"이라며 "물론 러시아가 주권영토 침범하는 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외교 실패가 곧 전쟁을 불러온다는 극명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최근 '선제 타격 발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등을 언급한 윤 후보의 강경한 태도가 자칫 외교 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취지의 지적이었지만,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침공 책임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윤 후보는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우크라이나의 위기를 두고 "동맹국이 없는 '비동맹' 국가의 외교적 설움을 보여주는 게 이번 사태"라며 "우크라이나는 신속히 NATO에 가입했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으나, 이 또한 일부 누리꾼들로부터 '전쟁 위험에 휩싸인 나라에게 섣부른 훈수를 두는 거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실언을 한 것은 대선 후보들뿐만이 아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26일 민주당 전북 유세에 참석한 자리에서 "6개월짜리 정치 초보가 나라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똑똑히 봤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가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우크라이나 국민 여러분께 오해를 드렸다면 제 표현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사과하며 "저는 어느 대선 후보보다 먼저 명료하게 러시아 침공을 비판했고 우크라이나 지지 입장을 밝혀 왔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윤 후보 또한 이날 "타국의 전쟁을 남의 일로 치부하고 말로만 평화를 외치는 정치인에게 우리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라고 이 후보를 비판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우크라이나 국민께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 사과를 드린다"라고 했다.
◆'젤렌스키 비판' 발언 두고 국내·외서 질타 쏟아져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전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 후보를 꺾고 당선된 인물이다.
지난 1978년 우크라이나가 아직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던 당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부터 TV 유머 관련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희극인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려왔다. 키예프 국립경제대학에서 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로는 '국민의 일꾼'이라는 정치 풍자극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국민 희극인'의 명성을 얻은 그는 지난 2018년, 자신의 히트작과 같은 이름인 '국민의 일꾼'이라는 정당을 세우고 정계에 진출했고, 이듬해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정당 창립부터 대선 승리까지 약 1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비약적인 성공을 거둔 정치 신인인 셈이다.
이 때문에 국정 활동 초기 일부 서구 언론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의구심 섞인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가 맞이한 안보 위기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인사 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연예인 지인들과 가족들을 측근으로 삼는 바람에, 정부에 안보 관련 전문가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다만 회의적인 시각은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 침공이라는 대위기를 맞이한 상황에도 침착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그라진 상태다.
이런 가운데 국내 대선 후보들이 안보 문제를 두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을 언급하면서 재차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후보들은 사과를 전했지만, 국외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 한국의 대외 이미지에 이미 상당한 피해를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 후보의 '초보 정치인' 발언은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인 '레딧(Reddit)'에 올라와 해외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들은 "히틀러의 침공이 폴란드 잘못이고 일본의 침략이 한국 잘못이라는 주장처럼 들린다", "젤렌스키는 아직도 수도에 남아있는데, 저 후보는 북한이 쳐들어왔을 때 서울에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전 세계가 러시아를 지탄하는데 한국만 이런 발언을 한다니 믿기지 않는다"라고 질타했다.
이런 자세가 한국의 동맹국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호주국립대 코랄벨스쿨 북핵 안보 관련 연구자이자 'NK뉴스' 필진인 아리우스 더는 "한국 정치인들은 국제 무대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맡길 원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어느 편인지 택하길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꼬집었다.
시민들도 '대선 후보들이 해외 정상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대선 토론을 인터넷으로 지켜봤다는 30대 직장인 A씨는 "지금 당장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항쟁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대선 후보라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는 게 황당했다"라며 "국내에도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분들도 토론을 봤을 텐데 마음이 어떻겠나"라고 질타했다.
20대 대학생 B씨는 "불과 수십년 전 6·25가 벌어졌고, 당시 우리도 군인과 민간인 수천명이 희생당했다. 그때 한 외국 정상이 '한국이 무능해서 그런 거다'라고 발언을 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라며 "황당하다 못해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는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진 만큼, 후보와 경선 캠프, 정당 차원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위상이 이전과 달라진 만큼 국제사회에서 우리에게 거는 기대도 훨씬 높아졌다"라며 "특히 우리는 수출국인 만큼, 글로벌 외교와 안보는 우리의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대선 후보들도 이런 달라진 환경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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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기존 한국은 4강(미국·일본·중국·러시아) 외교에 기반해 한반도 안보 문제에만 골몰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더 나아가 한반도 문제와 글로벌 외교를 연결 지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후보는 물론 캠프나 정당 차원에서 훨씬 성숙한 논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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