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포럼]새로운 한 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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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는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이 가슴 설레는 일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철이 든 이후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매번 숙제를 다 못하고 다음 과제를 떠 맡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슨 일이건 마감이 가까워져야 손에 잡히는 다소 게으른 천성 탓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지난 2021년은 어떠했느냐고 물었다면 단박에 365일 24시간 내내 임시방편으로 근근이 메우며 보낸 회색 빛 일년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병원이라는 코로나19 정국에 한층 민감한 환경 탓이리라. 하루하루 '곧 정상으로 돌아 올 거야'라는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며 보낸 2021년은 아득하게 길면서 시간의 밀도가 아주 낮다고나 할까, 듬성듬성하게 짜인 조직처럼 완성이 안된 느낌이 강했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흘러가고 괴로운 시간은 느리게 간다고 하지 않던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볼 때 코로나19와 함께 보낸 2020년과 2021년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길고 아주 우울하고 재미 없었던 해로 기억할 것이라고 되뇌고 다녔던 시간들이었다.

신년 호랑이 해를 맞으며 새로운 한 해를 현명하게 시작하고 싶어 다시 지난 한 해의 기억을 차근히 더듬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여의치 않아 저녁 모임이 줄어든 것은 초반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모처럼 집에서 저녁도 차려 먹고 TV도 볼 수 있었으니 한동안은 꽤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운동 부족으로 몸이 불고 둔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우선 건강을 위해 다시 규칙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아마도 새해의 첫 번째 과제가 될 터다.


아, 기억을 정리하다 보니, 집과 직장 이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이 시작해 삶에 큰 힘이 돼준 일이 있었다. 우연히 TV에서 본 '아모르 파티' 영상 하나에 꽂혀서, 유튜브 관련 영상 따라 다니며 푹 빠져 버린 가수 이승윤이 주인공이다. 관련 영상 따라 다니며 듣고 보고 하느라 새벽이 돼 충혈된 눈으로 출근하고, 전화기 배터리 충전기를 모시고 다니며 블루투스 이어폰을 주문하더니, 용감하게 음악 플랫폼 결제까지 하고는 이게 '덕질'의 시작이구나 깨달은 것이 6개월 전이다. 정의를 찾아 봤더니 덕질의 주체인 덕후는 깊이와 전문성 그리고 다양성으로 유행을 선도하고 새로운 소비를 주도하기도 한다는데 덕질 초보자 주제에 흉내라도 내보자고 내지른 게 이제 6개월 차가 된 것이다.

갑작스럽게 발동한 공폰 욕심에 노트북, 데스크톱에 태블릿PC까지 정성스럽게 책상 위에 정열 시키고 한밤중을 지나 새벽까지 눈 비벼가며 이것저것 조몰락거리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에도, 새로운 소비와 유행을 이끌어 가는데 한몫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자부심까지 스스로 부여하고 있는 판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는 인공지능이니 메타버스니 하는 것도 덕질을 열심히 배우고 따라 하다 보면 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변명거리도 하나 더 붙여줬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로 인해 길고도 우울하기만 하다고 생각한 지난 한해 역시 나름의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이 있었다. 우울한 회색만이 아닌 고유한 색깔을 가진 인생의 각별한 시간들을 쌓아 왔던 것, 아마도 새로운 한 해는 지난 나의 시간들이 쌓인 위에 또 하나의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가겠지.


시인이자 가수인 이승윤의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이 결국은 폐허가 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새로운 한 해의 시간은 나의 본연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나만의 특별한 색깔로 써내려 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난 나라는 시대의 처음과 끝이야 / 난 나라는 인류의 기원과 종말이야 / 난 나라는 우주의 빅뱅과 블랙홀이야 / 난 나라는 신화의 실체와 허구야 / 난 너의 이름을 닮은 집을 지을 거야, 폐허가 된다 해도('폐허가 된다 해도',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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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욱 분당제생병원 임상영양내과 바이오메디컬연구센터 소장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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