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흔든 2012년 11월18일, 민주당 지도부 사퇴
단일화 논의 물꼬는 텄지만 선거 전략가 부재 '부메랑'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5월2일 국회에서 정례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5월2일 국회에서 정례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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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해찬’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더불어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책사(策士)’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은 현역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정국을 진단하는 ‘눈’과 선거의 흐름을 바꾸는 ‘전략’은 여전히 평가를 받는다.


대선과 같은 큰 선거에서 한국정치를 대표하는 책사들의 몸값이 폭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김종인 전 의원의 도움을 구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선이라는 거대한 전장에 나서려면 검증된 전략가의 힘을 빌리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 대선은 미스터리 선거다. 당시 정치인 이해찬은 대선 책사의 역할에 더해 민주통합당 대표로서 선거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 민주당 선거를 총지휘했던 정치인 이해찬은 대선을 한 달 앞둔 2012년 11월18일 전격 사퇴했다.


정치인 이해찬의 퇴장은 대선을 앞두고 당 대표의 부재가, 선거 핵심 조력자의 퇴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장기에서 ‘차’와 ‘포’를 떼고 상대와 대결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겠는가. 당시 민주당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면 분주했던 2012년 11월18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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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선은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화두였다. 민주당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만 성사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판단에 당력을 집중시켰다. 대선 한 달을 앞두고 이해찬 대표의 사퇴로 이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이해찬 대표는 당시 “어떤 개인적 희생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사퇴의 배경을 전했다. 대선 승리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해찬 대표의 퇴장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 복귀’와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안철수 후보는 이해찬 대표가 사퇴해야 단일화 협상에 복귀하겠다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해찬 대표의 사퇴로 단일화 협상의 물꼬가 터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해찬 대표가 11월18일 오후 12시 사퇴를 선언한지 한 시간 이후인 오후 1시 안철수 후보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단일화 협상 복귀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이해찬 대표의 살신성인을 잊지 않고 높이 평가하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이해찬 대표의 퇴장을 지켜보며 단일화 협상에 나서야 했다.


이날의 상황이 후보 단일화의 촉매제로 이어졌을지는 모르나 12월19일 대선 본선을 고려했을 때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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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한 달을 앞두고 재개된 단일화 협상은 순탄치 않았다. 문재인 후보 쪽과 안철수 후보 쪽은 지루한 협상을 이어갔다. 양측 지지층의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선거 전략에 균열을 드러냈다.


문재인 후보만 보이고 민주당 의원들이 뛰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해찬 대표와 함께 최고위원들이 동반 사퇴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당 대표 없이 치르는 선거는 한계를 보였다.


민주당의 예상과 달리 단일화 성사는 대선 승리의 보증 수표는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성사됐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2012년 12월19일 대선의 승자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였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했던 원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검증된 책사, 이해찬 대표의 퇴장이다. 대선이라는 큰 선거를 치르다보면 매일 터지는 현안에 대응하느라 정치의 판을 폭넓게 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결과를 복기하면 ‘선거의 변곡점’을 찾아낼 수 있다. 패배한 쪽에서는 뼈아픈 순간이고 승리한 쪽에서는 화색이 돌게 했던 그 순간이다. 2012년 대선에서는 11월18일 이해찬 대표의 퇴장이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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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에서는 어떤 사건이 대선 판도를 가른 장면으로 기록될까. 대선 후보 쪽에서 위기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관리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만약 대선이 끝난 이후 뒤늦게 ‘아쉬움의 순간’을 찾아낸다면 후회만 커지지 않겠는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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