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병 걸려서 나오면 어떡하나" 한파에 코로나까지…혹독한 노숙인의 겨울
지난달 서울 노숙인 시설 5곳서 약 180명 집단 감염
"이 추운 날씨에 병 걸리면 어떡해" 노숙인들 불안
방역조치 강화로 백신 접종·PCR 음성 증명 등 절차 거쳐
전문가 "홈리스 복지 접근성 현저히 떨어져"
"서울시는 감염 취약자들 방치 말아야" 대책 촉구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보호시설이요? 어디 있는지 알기는 하지…그래도 갈 생각은 없어요."
15일 이른 아침 서울역 인근에서 만난 한 노숙인은 손사래를 쳤다. 오전 내내 비를 맞았는지, 외투의 어깨 부분이 거뭇하게 젖은 그는 한 손에 식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전날부터 내린 비로 인해 기온은 뚝 떨어졌고, 바닥은 축축했다. 그럼에도 일부 노숙인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일시보호시설'에 들어가는 대신, 역 내부 기둥이나 벽에 등을 기댄 채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노숙인들을 망설이게 하는 것은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었다. 보호시설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폐쇄될 게 뻔한 데다, 만일 자신이 감염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한파에 이어 코로나19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노숙인들의 겨울이 더욱 혹독해지고 있다. 전문가는 코로나19 검사 음성 증명서 등 일부 방역조치가 오히려 노숙인들의 복지시설 접근성을 떨어트리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며, 감염병에 노출된 노숙인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병 걸려서 나오면 어떡하나" 노숙인들 불안
이날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무료 급식소에 모인 노숙인들 또한,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면서 보호시설에 들어가기 힘들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60대 노숙인 A씨는 "코로나 시작된 뒤로 아무나 일시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백신 접종 체크하지, 열 체크하지 (시설 내) 사무소 직원들과 상담도 해야 하고 1주일 동안 유전자증폭(PCR)검사 음성 판정 증명서도 받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서 PCR 음성 증명서와 백신 접종 증명서를 꺼내 들어 펼쳐 보였다. 그는 "이게 없으면 그건 노숙인이 아니라 일반인이야"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다른 노숙인 B씨는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정부 시설을 이용하길 꺼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 쪽 시설도 집단감염이 터져서 이미 폐쇄됐다"라며 "또 혹시나 (시설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도, 병 걸려서 나오면 어떡할 건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라고 되물었다.
서울역 노숙인 지원시설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인근에 텐트를 치고 노숙하고 있는 이들 또한 감염병을 걱정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울역 광장 근처를 걷고 있던 노숙인 C씨는 '텐트 대신 지원시설에 입소할 생각은 없느냐'라는 질문에 "코로나 때문에..."라며 말꼬리를 줄이기도 했다.
◆복지시설 내 집단감염 다수…한파·코로나19 이중고
서울시 등 지자체들은 겨울철 한파에 대비해 노숙인 복지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일시보호시설'이라고 불리는 이 시설은 노숙인들에게 일시적으로 숙식, 의료, 샤워, 미용 등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추운 밤에는 오후 5시4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30분까지 응급 잠자리도 이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재난이 지속되면서, 이같은 시설들도 집단 감염에 대비해 노숙인 출입 시 방역 조치를 강화해 왔다. 단순 방문시에도 열 체크, 손 소독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 시설 내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일부 노숙인들이 이용을 꺼린다는 데 있다.
감염자와 공동 생활을 하다가 전염되기라도 하면, 노숙인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재택 치료를 받기 힘든 데다 PCR 음성 증명을 증빙해야 하는 무료 급식소 등 일부 지원시설 이용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
실제 노숙인 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사례는 다수 있다. 지난 11월 노숙인 관련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이 한달간 자체 조사한 결과, △영등포 노숙인 복지시설 △동대문 노숙인 시설 △영등포 고시원 △서울역 인근 △종로쪽방 등 서울 총 5곳의 시설에서 최소 180명이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숙인들은 코로나19 감염과 한파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 감염 취약한 홈리스 방치 말아야" 행동 촉구
전문가는 코로나19 검사 음성 증명 등 방역 조치가 오히려 노숙인들의 복지 서비스 접근성을 떨어트렸다고 지적하면서, 감염병에 노출된 노숙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올해 1월 말부터 서울시는 '음성확인제'를 시행했는데, 그 결과 홈리스 당사자들의 복지서비스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라며 "확진자가 발생한 임시주거지도 확진된 이들이 자가격리 없이 공동생활을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홈리스의 서비스 접근성을 낮추는 조치들은 조속히 시행하면서 실제 확진자들에 대한 보호는 손 놓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방역당국이자 복지당국인 서울시는 감염된 홈리스를 취약한 쪽방, 고시원, 컨테이너, 광장 모퉁이 등에 방치하지 말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 측은 복지시설 내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한 소독 조치 후 재개방한다고 밝혔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시설 내 머물렀던 분들 중 확진자가 발생하면 소독, 환기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잠시 시설을 닫아야 할 수 있다. 그래도 절차가 끝나면 다시 개방한다"며 "개방 준비 기간 동안 닫혀 있던 것을 노숙인 분들이 폐쇄된 것으로 착각할 수는 있는데, 확진자가 나왔다고 문을 닫거나 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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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입 입소 시 PCR 음성 증명 절차에 대해서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해서 하는 것"이라며 "접종자 분들은 증명서 없이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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