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사진= 조이앤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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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당신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을 꺼내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장면·묘사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사람은 나와 다른 낯선 사람을 마주했을 때 두려움과 경계심을 느낀다. 해를 끼치거나 위협적이라고 생각되는 대상에 대한 거부반응, 즉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벌레를 보면 혐오감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 역시 비슷한 감정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런 혐오 반응이 감염병, 병균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 생겨난 본능이라고 설명한다. 혐오는 일차적으로 다른 생김새나 특성을 가진 대상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됐으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정이 특정 대상이나 집단을 향한 차별과 배제의 행동으로 발전하면 이것은 본능적 반응이 아닌 폭력이 된다. 영화 '경계선'은 이런 혐오의 감정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의 연대로 나아갈 것인지를 질문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티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발달한 후각으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있다. 그는 이 능력을 이용해 스웨덴 출입국사무소 세관 직원으로 일하며 수상한 사람을 잡아내는 일을 한다.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에서 수치심, 죄책감, 분노 등의 감정을 읽고, 범죄자나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색출하는 업무다.

티나는 겉모습 또한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뭉툭한 이마와 코, 튀어나온 배, 두툼한 덩치를 가진 그는 평생 스스로를 결함이 있는 못난 존재라고 여겨왔다. 선천적으로 발달한 후각으로 세관에선 누구보다 뛰어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밀수품을 적발당한 사람들에게 "못생긴 게 재수 없게"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그래서 티나는 사람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는다. 남자친구와 그가 키우는 개 몇 마리와 함께 살고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교류는 아니다.


그러다 티나는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의 보레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서 자신들은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는 사실을 듣는다. 티나가 사람들과 다른 외모,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은 티나의 DNA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트롤의 특성이었다는 것이다. 보레에게 티나는 결함이 있는 존재가 아닌 '완벽한 존재'다. 그리고 닮음을 공유한 이들은 빠르게 사랑에 빠진다.

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사진= 조이앤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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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세계에서 그들과는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진 티나와 보레는 주류에 속하지 못한 비주류, 즉 소수자를 상징한다. '경계선'은 트롤인 티나와 보레의 이미지를 통해서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칭하는 기준과 이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사회 규범에 대해 직설적으로 의문을 표하는 영화다.


그런데 '경계선'이 묘사하는 소수자의 이미지는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다. 소수자를 다루는 많은 영화가 소수자를 대변하는 인물과 관객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인물에 동화될 수 있도록 한다면, '경계선'은 오히려 트롤과 인간, 또는 관객 사이의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 방식의 화법을 취한다.


영화에서 티나와 보레의 모습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미(美)의 기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이미지로 묘사된다. 이들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혐오하는 벌레를 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트롤이라는 존재 역시 사람에겐 몸서리치며 밀어낼 수밖에 없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들이 음식을 먹을 때, 냄새를 맡을 때, 분노할 때의 모습은 사람보단 짐승의 움직임에 더욱 가깝다. 사랑을 나눌 때도 '인간의 눈'에선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이런 혐오감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통해 의도적으로 관객과 인물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소수자의 모습은 자신을 혐오하는 인간 세상에 적응하고 포섭되는, 혹은 자신들이 가진 결함과 다름을 이해하라고 호소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혐오의 세상에서도 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인물을 그린다.


영화 '경계선' 스틸 이미지./사진= 조이앤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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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 평생 사회에서 겉돌며 살아왔던 티나는 보레를 만나면서 난생처음 동질감이란 감정을 느끼지만, 결국 그와 같은 길을 가진 못한다. 티나는 사람들과 적극적인 소통까진 아니더라도 직장이 있고 이웃과 교류하며 살아간다. 반면, 보레는 과거 인간들이 자신의 부모를 학대하고 실험에 이용했단 사실 때문에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보레는 심지어 인간이 낳은 아기와 트롤의 아기를 바꿔치기하는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른다.


보레는 티나에게 인간 세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트롤 종족이 있는 핀란드로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보레는 말한다. "당신은 인간이 아니에요" 티나는 되묻는다. "난 못해요. 악마가 되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인가요?" 티나는 보레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 인간들이 가한 혐오에 혐오로 맞선 보레의 행동을 티나는 동조하지 못한다.


앞서 트롤을 묘사한 혐오의 이미지가 인물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한껏 넓혔다면, 영화는 이 지점에서 그 거리감을 단숨에 좁힌다. 누군가는 흉측하게 생겼다며 티나를 비난할지라도, 그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피해 주려고 한 적이 없었다.


보레와 이별한 후 티나는 인간 세계에서 계속 살기를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인간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티나는 이전에는 꺼렸던 벌레를 이젠 망설임 없이 먹는다. 보레가 보내온 자신의 아기에게도 벌레를 먹인다. 인간 세계에 남기로 하면서도, 자신이 트롤이라는 사실을 티나는 스스로 명확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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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는 인간과 트롤을 가르는 경계선 위를 왔다, 갔다 한다. 티나는 인간인가, 트롤인가? 그리고 세상엔 이런 경계선을 오고 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정상이라 불리는 기준이 우리의 삶을 지나치게 속박해왔던 것은 아닐까. 그런 기준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닌, 한 조각이라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과정이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 아닌가, 영화는 그렇게 묻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가 혐오의 이미지를 택한 이면에는, 인간은 혐오의 감정에 굴복할 만큼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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