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아시아여성리더스포럼 10기 멘토
서지희 삼정KPMG 부대표 인터뷰

女이사 30%이상 할당제 법제화 필요
야근·출장 업무 강도 높은 회계법인
결혼후 '워라밸' 찾아 이직 수없이 고민
위기때마다 후배들 생각하며 버텨
여성임원·부대표 최초 타이틀 거머줘
"인생은 속도보다 포기 않는 자세 중요"

서지희 삼정KPMG 부대표가 18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서지희 삼정KPMG 부대표가 18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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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지환 기자] 과거 회계사는 잦은 야근과 출장 등으로 업무 강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했다. 매년 찾아오는 감사 시즌마다 잠을 쪼개며 일터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라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더 컸다. 입사는 회계법인으로 했지만 좀 더 업무 강도가 약한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자연스럽게 여성 회계사가 회계법인에서 파트너까지 오르는 일은 찾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수십년 동안 회계업계에서 든든한 여성 리더로 자리하고 있는 서지희 삼정KPMG 부대표가 특별한 이유다. 서 부대표는 대형 회계법인 첫 여성 임원을 시작으로 첫 여성 파트너, 첫 여성 부대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서양’으로 불린 ‘첫 여성’ 회계사

화려한 이력과 다르게 사실 서 부대표의 회계사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서 부대표가 1986년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첫 여성 회계사로 입사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어디선가 ‘서양’하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자 몇 번의 ‘서양’이 더 외쳐졌다. 서 부대표는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옆 자리 남성 입사 동기가 "서 회계사를 부르는 것 같아"라고 말해주고 나서야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 당시 여비서를 부르는 호칭은 성에 ‘양’을 붙이는 식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일터에서는 조직 내 ‘첫 여성’ 회계사를 아직 낯설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이후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찾아왔다.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엄마라는 본능이 꿈틀대면서 1년에 한두번씩은 꼭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들처럼 워라밸을 찾아 로컬회계법인 또는 회계유관기관으로의 이직이나 학계로의 전직도 생각했다. 서 부대표는 "‘내가 이 일을 왜 하지’에 대한 의문에서 스스로 확신이 부족했다"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기회 비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응원이 큰 버팀목이 됐다. 당시 로컬회계법인에 있던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는데 ‘지금 그만두면 대형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다른 여성 후배들에게 영향이 클 것이라며 너만은 버텨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 부대표는 "고민이 많았던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후배들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며 "후배들로부터 ‘꿋꿋이 업계에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받곤 하는데 이 말을 들을 때가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서지희 삼정KPMG 부대표가 18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서지희 삼정KPMG 부대표가 18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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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않는다면 언젠가 빛봐"…다양성 확보 시급

‘Never 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말자).’ 서 부대표는 여성 후배들에게 속도 조절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음만 앞서 자신의 페이스를 과도하게 끌어올린다면 결국 마라톤 같은 인생을 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 부대표는 "먼저 오른 사람을 쳐다보거나 나를 앞서려는 사람을 신경 쓰다 보면 쉽게 지친다"며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힘들 때는 호흡을 조절하며 잠시 쉬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와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역할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게 서 부대표의 생각이다. 해외 콘퍼런스나 미팅을 가면 자주 받는 질문 하나가 우리 나라의 현 수준을 단번에 보여준다. ‘왜 한국은 경제력에 비해 여성의 경제참여 비율이나 여성 임원 비율이 낮느냐.’ 지난 3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발표한 ‘2021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56개국 중 102위로 하위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여성 임원 비율은 25.6%로 5.2%인 우리보다 5배 가까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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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부대표는 "이 문제를 성(gender)보다는 다양성(diversity)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며 "조직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임계 질량을 보통 30%라고 얘기하는데 10명 중 3명 이상의 다양성이 확보돼야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여성이사 비율 할당제 같은 제도적 법제화를 언급했다. 서 부대표는 "노르웨이는 2008년 여성이사 40% 할당제를 시행했고, 독일은 상장사 여성 임원 비율이 17%인데도 최근 기업과 각 부문의 여성 임원 비율을 30% 이상으로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W프런티어]서지희 "여성이사 할당제는 젠더보다 조직 다양성의 문제" 원본보기 아이콘

박지환 기자 pj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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