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고연전' 매주 열리는 미국 누빈 '덕후'들…"스포츠 덕후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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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정기 고연전(연고전)의 백미는 농구다. 해마다 농구·축구·야구·아이스하키·럭비 등 5개 종목에서 이틀 동안 겨룬다. 축구 문외한도 4년에 한 번은 월드컵을 보듯 스포츠 문외한인 두 학교 학생들도 1년에 한 번은 정기전을 관람한다. 이들은 경기 내용, 점수를 기억하지 못해도 함께한 사람들 표정 등은 상세하게 기억한다.


'스포츠도 덕후시대'에는 정기전을 주마다·날마다 보는 사람들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 그것도 미국의 정기전이다. 미국 대학 스포츠팀인 유타 유츠(미식축구), 미시간 울버린스(미식축구), 듀크 블루데빌스(농구)의 경기를 보며 울고 웃는다. 적진에 쳐들어가 자기 팀을 응원하는 '객기'도 부린다. 한 저자는 파란 유니폼으로 가득 한 유타 유츠의 라이벌 팀 원정 경기장에서 맥주 한 잔 걸친 뒤 빨간 유니폼을 입고 당당하게 적진에 들어갔다 몰매까지 맞을 뻔했다.

'스포츠도 덕후시대'가 스포츠 마니아들의 썰을 나열한 '그냥 책'에 불과하다고? 천만에. 목차부터 남다르다. 스포츠 커뮤니티, 유학생활, 스포츠 여행, 한 종목 및 한 분야의 마니아, 덕업일치(취미를 직업으로 살림) 등 다양한 '덕후'의 모습이 세세하게 분류돼 있다. 덕후란 특정 분야에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마니아 하면 으레 경기 관람, 경기 분석에 국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스포츠도 덕후시대'의 저자들은 마니아를 넘어 스포츠로 돈 벌고 생활하는 덕후들이다.


국내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한 저자는 지금도 주말 새벽에 미시간 울버린스 경기를 시청한다. 미시간 대학의 미식축구 라이벌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인데 이들 대학은 해마다 한 번씩 맞붙는다. 그날이 되면 저자는 '옥수수색'(노란색이 아니라고 책에 강조돼 있다)으로 물든 10만여 학우의 응원전을 보며 추억에 빠진다. 미시간 울버린스 홈 경기장의 수용 인원은 10만9901명으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구장이다.

국립대 교수인 다른 저자는 6년간의 고달픈 유학 생활 중 생각지도 않았던 미국 콜로라도주의 산골짜기 팀을 응원하게 됐다. 미국프로농구(NBA)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팬인 그는 콜로라도주로 날아가 공부하다 연고지의 대학팀 경기를 본 뒤 그 팀에 푹 빠졌다. 친구들도 텍사스주·캘리포니아주 출신으로 학교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콜로라도주와 전혀 인연이 없었던 이들이다. 이들은 지금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콜로라도 산골 팀 얘기를 나눈다.


스포츠가 생업이 된 저자도 있다. 명문대 법대 졸업 후 '만년 꼴찌' 프로 구단에 들어가 프런트로 우승을 일궈낸 이야기, 평범한 4년제 문과 대학생이 6년간 축구 업계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일하며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경기 운영 업무를 성실히 소화해낸 이야기, 크로아티아 청소년 대표 선수들과 크로아티아 축구 선수라는 주제 아래 대화해 공감을 얻고 헹가래까지 받아본 이야기 등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성공한 커리어맨', '스포츠 찬양'으로 비치길 원치 않는다. 이들은 "사회 경력과 관계없이 이토록 다양한 스포츠 덕후들이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문화예술 공연 덕후처럼 스포츠 덕후도 얼마든지 품위 있고 진지해질 수 있다", "대학(학원)-프로 스포츠를 따로 접하는 한국과 달리 두 스포츠 모두가 시민들의 삶 자체인 미국 사례에서 시사점이 발견되길 바란다", "스포츠를 낭비로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사람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공정·노력·열정 등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육수단인 만큼 결코 낭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말한다. "덕후는 집안에 틀어박힌 채 고립되거나 음지에서 몰래 '덕질(덕후들이 관심 분야를 탐구하고 즐기는 행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스포츠 덕후들도 '오타쿠·마니아 또는 지식인·뇌섹남녀'로 똘똘 뭉쳐 현실을 살아내고 있다고. 스포츠 덕질은 '찌질한' 이미지만 쌓는 짓이 아니라 일상의 치열한 현실을 더 잘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드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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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도 덕후시대/주장훈 외 17인 공저/박영사/1만3800원)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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