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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루카' 선조 넘어 생존 보장의 자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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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코 카사로사 감독 애니메이션 '루카'
바다 괴물 모험담 통해 관습·규범 갇힌 나를 돌아봐

[이종길의 영화읽기]'루카' 선조 넘어 생존 보장의 자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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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가지를 뻗듯 갈라지며 진화해왔다. 진핵생물(Eukarya)은 약 19억년 전 탄생했다. 고세균(Archaea)의 진화로 등장했다고 짐작된다. 최초의 생명이 약 40억년 전 나타났으니 이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생명의 역사 초기에는 진정세균(Eubacteria)도 존재했다. 이들의 공통 선조는 최초의 생명이자 현재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조상이다. 이를 루카(Luca)라고 일컫는다.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애니메이션 ‘루카’는 유년 시절을 소환하는 모험담이다. 생물이 분화한 출발점과 무관한 듯하다. 그런데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 목소리)의 생김새가 심상치 않다. 물고기 꼬리와 연둣빛 비늘로 유유히 바닷속을 누빈다. 용기 내어 물 밖에 나오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 물에만 닿으면 ‘바다 괴물’이 되는 신비한 생명체다.

루카는 바닷속에서만 머물기를 거부한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인간으로 둔갑한다. 단순히 해변 마을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늘 너머 태양계의 토성 고리까지 궁금하게 여긴다. 인간 친구 줄리아(엠마 버만 목소리)는 천체망원경으로 보여주며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 모든 걸 못한다고만 생각해. 한 번 시도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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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의 친구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 목소리)도 진취적이다. 하지만 부모 잃고 혼자 지내온 외로움을 달래려 해변 마을에 안주한다. 그 마음은 일찍이 고철과 폐품으로 만든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로 도약하는 신에서 나타난다. 급경사를 확인하고 두려워하는 루카에게 "네 문제점을 알았어”라며 “네 머릿속엔 브루노가 들어 있네"라고 말한다. "브루노?" "따라 해. 닥쳐 브루노!" "닥쳐, 브루노." "더 크게, 닥쳐, 브루노!" "닥쳐, 브루노!" "아직도 걔 목소리가 들려?" "아니, 네 목소리만 들려!"


알베르토의 대사는 중의적이다. 용기를 북돋는 듯하면서도 능력의 한계를 자각한다. 브루노는 이탈리아에서 흔한 남성 이름이다. 루카는 물론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사상의 자유를 갈망한 자연철학자다. 우주가 태양계와 비슷한 많은 세계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다. 성서를 천문학적 함축이 아닌 도덕적 가르침 때문에 추종해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현대 휴머니즘적 행동주의까지 가리킨 자유로운 사고의 순교자다. 루카는 그처럼 관습과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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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전만 해도 흔히들 물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오려는 과정에서 다리가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사지동물이 육지를 이동하려면 다리가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였다. 그 쓰임새는 하나로 국한할 수 없다. 개구리를 닮아 ‘프로그피쉬’로 불리는 물고기 씬벵이에게는 다리가 아니라 지느러미가 있다. 그걸 다리처럼 써서 해저를 걸어 다닌다.


물에서 사는데 다리가 있는 생물도 꽤 존재한다. 새우 가운데는 평생 육지에 올라오지 않는 종류도 있는데 그래도 다리가 달려 있다. 일본장수도롱뇽 역시 물에서 거의 나올 일이 없지만 멋진 다리를 가졌다. 물속에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예컨대 얕은 여울에 살면 떨어진 나뭇가지를 밀어 헤칠 수 있다. 유속이 빠를 때면 바위를 붙잡을 수도 있다. 특별히 서두르지 않을 때는 헤엄치는 것보다 해저를 거니는 편이 훨씬 편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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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의도와 목적 아래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덜 고귀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해 더 깊게 성찰할 여지를 지닌다. 실천까지 하는 루카를 통해 해변 마을 사람들은 달라진다. 처음에는 ‘바다 괴물’이라 부르며 죽이려 들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일찍이 진화생물학자들은 돌연변이를 오류나 결점이 아닌 생명 활동의 진정한 본질로 인식했다. 변화에 맞는 변이가 없었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했을 것이라며. 루카야말로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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