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사는 영광스러운 국가,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만드는 것에 내가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에 있다." 올해로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된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서전(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남긴 글귀다. 그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시기에 설립한 현대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창업세대로, ‘사업보국’을 통해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한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삼성그룹을 일군 이병철 명예회장의 인생을 꿰뚫는 키워드도 사업보국이었다.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는 말처럼, 그는 1938년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는 삼성상회를 설립했을 당시나 1969년 전자사업을 시작할 때, 1983년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을 때에도 늘 사업보국을 강조하며 혁신을 이어갔다. 이 명예회장의 이 철학은 고 이건희 회장을 거쳐 이재용 부회장까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이들뿐 아니다. 구인회 LG그룹 명예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창업세대들은 한결같이 ‘국가가 살아야 기업도 산다’는 일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 앞장섰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76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뉴노멀 시대를 사는 지금 기업인들의 과제는 창업 1세대 정신을 계승, 재창출하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사업보국을 기업가 정신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 기업인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 규제 완화 등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규제 과잉의 덫에 빠져 있다. 한국경영자총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나온 법안 중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는 법안은 213건에 달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를 타깃으로 한 규제가 다수였고 강도도 셌다. 일례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산업 현장에서 사망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CEO는 최대 징역 10년6개월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여기에 재해 사고시 CEO에게 징역 1년 이상을 처벌할 수 있게 한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적용할 경우 CEO는 이 두 법만으로도 11년6개월 이상 교도소에 갇힐 수 있다. 외국에서도 찾기 힘든 징벌적 규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델인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도 기업의 안전조직문화가 미흡한 경우 법인에 대한 처벌만을 규율하고 있을 뿐이다. 경영층 개인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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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회가 만든 규제가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사업을 포기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경이다"란 말이 나오겠는가. 기업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더는 정치 이념으로 기업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도국가로의 도약이 목표라면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이 요구하는 규제혁신 문제에 활발히 소통해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는가.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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