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수교 위해 '미군 철수' 고려했던 노태우 정부…한국 외교 30년 비사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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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지난 1989년 노태우 정부가 소련과의 수교 과정에서 미군 철수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반발 속 추진된 1990년 한·소 정상회담은 '태백산'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외교부는 한·소 정상회담 과정 등이 담긴 외교문서 2090권(33만쪽 분량)을 원문해제 요약본과 함께 29일 일반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와 한·소 정상회담 추진 경과, 7·7 선언, 유엔 가입 관련 내용이 담겼다.

이 당시 한국과 소련의 수교 과정에서 미군 철수라는 선택지까지 검토된 것으로 나타났다. 1989년 4월 27일 홍순영 외교부 제2차관보가 블라딜린 극동문제 연구소(far east affairs) 편집부차장과 가진 면담에서는 '한·소 수교시 미군철수 여부'가 논의되었으며, 우리 측은 "한·소 수교 및 4강의 교차승인과 국제적 보장이 확보되면 주한 미군 철수가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소련 측은 "한·소 관계 접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실익이 없어 소련 내 보수주의 세력의 비판이 있다"고 밝혔고, "북한의 남침이 있다면 자살행위"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한·소관계 정상화에 북한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정황도 외교문서에 포착됐다. 1989년 1월 방한한 미구엘 스테클로프 소련연방상 고문이 코트라 면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일성 북한 노동당 주석은 소련의 한국에 대한 정책을 두고 소련 외무장관과 심각한 의견대립을 보이며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이외 공식 사절단의 전원 철수'를 언급하며 위협하기도 했다.


1989년 헝가리와 수교를 맺은 노태우 정부는 1990년 한·소 정상회담을 추진했고, 북한을 의식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한·소 정상회담 관련 사항을 '태백산'이라는 암호명으로 부르며 5월 31일 대외 공식발표 전까지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북한은 6월 4일 정상회담 이후 강하게 반발했지만, 한국과 소련은 그 해 9월 30일 국교까지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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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도서관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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