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이준익, 흑산에서 자산을 찾다
영화 '자산어보' 정약전·창대 신분 다른 두사람 상호보완 관계로
세상이라는 집단에는 비관적이지만 개인이라는 존재엔 낙관 시각 담아
"영화 끝나는 순간 우리 이야기 시작…자산어보에서 희망 찾길"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흑산도는 거의 유배지로만 등장한다. 유배객들은 섬의 자연을 벗 삼아 주로 시를 지었다.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진 않았다. 스스로 잠시 있다 떠날 존재로 인식했다. 서학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유배된 정약전(1758~1816)은 달랐다. 그의 저서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창대라는 이름이 자주 나온다. 공동 저자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서문에서부터 언급하며 깊은 신뢰를 보낸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소년이 있었다. 두문불출하고 손을 거절하면서까지 열심히 고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해, 대체로 초목과 물고기와 물새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했다. 나는 드디어 이 소년을 맞아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 연구를 계속했다."
영화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은 신분이 다른 두 남자의 관계를 상호보완으로 봤다. 자연과학적 호기심과 인문학적 욕구를 서로 채우는 이야기로 꾸며 그동안 부각해온 주제의식을 분명히 한다. 집단에 대한 비관과 개인에 대한 낙관이다. 백미는 내륙에서 썩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 창대(변요한)와 그런 제자를 멀리서 응원하는 정약전(설경구)의 교차 편집. ‘자산어보’의 갑오징어·성게 기록을 빌려 창대의 쓰리고 아픈 마음을 달랜다.
"(오징어) 먹물을 취하여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그 뼈는 곧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 살이 나게 한다."
"창대가 말하기를 ‘성게 입에서 새끼 새 한 마리가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 비록 껍데기 속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이것이 변해 파랑새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새로 변한다고 흔히 말하는 밤송이새가 이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목민심서’의 길을 걷겠다고 스승 곁을 떠난 녀석이다. 호언장담을 실천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괴롭겠나. 정약전이라면 그런 제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끝까지 응원했을 것 같다. 그래서 흑산이 아니라 자산이다."
-희미하게 사라져버린 오징어 먹물 글씨는 정약전 자신일 수도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운명이지만, 창대를 향한 응원으로 바닷물을 만나 다시 살아난다.
"깨어있는 지성은 퇴색하지 않는 법이니까. 이 또한 개인에 대한 낙관과 이어진다. 나는 늘 그랬다. 가장 흥행한 ‘왕의 남자(2005)’에서도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이 서로 광대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한다. 그들이나 정약전·창대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 시작된다. ‘자산어보’에서 희망을 찾길 바란다."
-지금 시대에 유효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나 개인의 차이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자산어보’에서는 정약전과 정약용(류승룡)이 그렇다. ‘자산어보’는 수평적 세계관, ‘목민심서’는 수직적 세계관을 따른다.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지금의 민주주의도 다르지 않다. 집단만큼 개인에게도 충분한 가치와 미덕이 있다. 그것이 무시되지 않고 존중되길 바라고 있다."
-파랑새에 대한 해석은 정약전이나 창대도 같지 않았을까 싶다. ‘자산어보’에서 생물학적 지식을 설명하다가 대뜸 신화적 상상력을 펼쳐서다. 성게뿐만 아니라 새조개, 새꼬막, 누비조개 등의 설명에서도 새로 변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정확하다. 파랑새는 정약전에게 유배의 고통에서 벗어나 초월하고 싶은 바람일 수 있다. 창대나 흑산도 주민들에게는 고된 바닷일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일 수 있고. 그 지점에서 공유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영화에서는 창대를 향한 응원의 성격이 더 강하다. 아무리 세상이 썩어도 새롭게 눈을 뜨는 젊은이들은 계속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걸 보여주려고 흑백의 틀은 깨고 파란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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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흑산이 아니라 자산인가.
"정약전의 말대로다. 그는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지만 창대를 만나 호기심을 되찾았다. 그래서 음험하고 죽은 검은색 흑산에서 그윽하게 살아있는 검은색 자산을 발견한다. 개인적 불행이 세상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그 불행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유배라는 시련이 역설적으로 참된 자유인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래서 설경구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고 싶었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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