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선거승리에 재정을 바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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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빚도 자산’이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과 마찬가지로 빚 역시 생산성이 높은 곳에 투입하면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부채의 역할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빚은 흔히 ‘양날의 검’으로 비유된다. 돈을 빌려 수익을 얻는다면 레버리지 효과로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반면, 부지불식간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 사회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위협적인 요소가 된다. 국가가 여러 목적을 위해 빚을 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성장목표를 달성하면 마중물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든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피폐한 삶을 맞이하게 된다. 개인이든 국가든 돈을 빌리는 행위에 대해선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들어 부채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관대해졌다. ‘절대 빚을 져선 안된다’는 신념은 점차 사라지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더욱 크게 자리잡았다.


이런 인식은 지난해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중앙은행은 앞다퉈 금리를 낮추고 채권을 발행해 자금의 흐름을 원활히 하는데 집중했다. 돈의 가치가 낮아지면서 쉽게 빌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부담이 되더라도 부채를 늘려 기업과 가계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됐고, 개인 역시 싼 이자에 돈을 빌려 부동산과 주식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빚의 규모는 점차 커지지만 미국·유럽의 경제전문가들은 "지금은 아낌없이 돈을 풀어야 할 때"라며 넘쳐흐르는 유동성을 여전히 옹호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에서 나타난 자기 반성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도 금리를 낮춰 돈을 푸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안정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자 금세 유동성을 거둬들였다. 그 결과 재정투입 대비 효과가 부족했다는 진단이 곳곳에서 나왔다. 코로나19사태 이후 현금지원을 중단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의 유동성 공급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 마중물 보다는 소비로 사라지는 생계용에 가깝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증시는 지나치게 과열된 반면, 고용을 늘리고 혁신을 강화하는 투자는 뒷전이다. 취업이 어려운 청년층이 빚을 내 증시에 뛰어드는 트렌드는 돈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돈 벌 기회가 사라지니 과열된 자산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돈잔치가 멈추길 바라지 않는다. 특히 일부 취약계층과 전국민을 대상으로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을 보면 돈잔치를 계속 이끌어 가고 싶은 속내가 엿보인다.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곤 초조함마저 엿보인다. 재정은 한계가 있는 만큼 취약계층을 두텁게 지원하자는 전문가들의 반론에도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자세를 보면 더욱 그렇다.


여당은 ‘빚도 자산’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무차별적인 지원이 오히려 마중물이 돼 언젠가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선거를 위해선 재정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투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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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세수입이 8조원 가까이 줄었다.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물론이고 줄어든 폭도 심상치 않다. 여당 주장대로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면 나랏빚을 추가로 내야 한다. 이는 국가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친다. 선거 때문에 재정을 희생할 순 없다. 선거는 몇 년 후 다시 오지만 한번 손상된 재정은 회복되기 어렵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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