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건, 무책임한 경찰 비난
경찰 수사권 확대에 우려의 목소리
예방적 경찰활동, 법·제도 마련 시급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김창룡 경찰청장이 연초부터 국민들 앞에 두 번이나 머리를 숙였다. 석달 전 생후 16개월 된 입양 아동이 양부모의 처참한 학대에 의해 사망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서다.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를 한 데 이어 전날엔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을 하면서 "경찰의 최고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김 청장이 두 번이나 사과했으나 무엇이 이런 비극을 낳은 구조적 이유인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향후 대책으로 "아동학대 예방 정책을 총괄하는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아동학대 조기 발견 및 보호·지원과 학대수사 업무가 유기적으로 이뤄지도록 유관기관과 공고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관련 부서가 없던 것도 아닐테고, 유관기관과 협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닐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사후약방문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사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김 청장 스스로도 잘 안다. 선제적·예방적 경찰활동을 뒷받침할 법과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 청장이 경찰활동의 중심축으로 꼽는 것이 ‘예방치안’이다. 김 청장은 작년 말 본지와 인터뷰에서 정인이 사건을 언급하며 "아동학대 가능성이 있지만 가족이 강하게 항의하면 경찰관은 물러설 수 밖에 없다"며 "적극적·선제적 경찰활동을 해도 신분에 불이익이 없도록 법으로 확실히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경찰의 권한은 최근 들어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 13일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을 조정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67년 만에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면서 경찰은 앞으로 검사의 지휘 없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은 검찰로 보내지 않고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됐다. 막강한 수사 권력을 손에 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권한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인이 사건과 비슷하게 초동 수사 부실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동 사건들은 물론이고 최근 별다른 처벌 없이 내사 종결해 ‘봐주기 의혹’이 제기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해 언론보도 전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이른바 드루킹 사건, 제 식구 감싸기와 검은 세력과의 유착이 동시에 드러난 버닝썬 사건 등 경찰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수사에서는 무능함을, 권력층 비리 수사에서는 눈치 보기 행태를 보인 사례는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황당한 일마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결국 문제는 이미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경찰에게 추가적인 사전 개입권까지 주는 것이 국민 안전에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낳게될 것인가이다. 정인이 비극을 막기 위해선 경찰의 권한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지만, 그럴수록 권한 남용의 우려는 커지게 된다. 경찰 수장이 국민적 공분에 고개를 숙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머리를 맞대는 일이다. 최소한의 공권력 행사와 적극적인 개입, 동전의 양면을 어떻게 관리하고 적정선을 찾을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제도화 시키고 견제 받을 것인지. 100년 경찰 역사상 가장 힘있는 청장이 된 김창룡호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의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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