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 60년 설치미술 거장의 식지 않는 실험정신
국립현대미술관 이승택 회고전 '거꾸로, 비미술'
이승택 '힙', 1972, 석고에 물감, 바니쉬, 노끈, 57x38.5x22.5㎝. 작가 소장(왼쪽), 이승택 '무제, 19682018', 스테인레스스틸, 스틸, 우레탄 비닐, 가변크기, 작가소장(오른쪽 위), 이승택 '이승택 분신행위예술전', 영상, 1989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 이승택(88)씨는 기자간담회에서 대학 재학 당시 처음 덕수궁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학교 때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러 덕수궁에 가자고 했다.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했더니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덕수궁에 처음 갔다. 친구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나는 건물이 너무 신기해 덕수궁 건물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그때 고드랫돌을 하나 봤는데 그게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다."
고드랫돌이란 발이나 돗자리 엮을 때 날을 감아 매어 늘어뜨리는 조그마한 돌이다. 이승택은 고드랫돌에서 영감을 얻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돌, 여체 토르소, 도자기, 책, 고서, 지폐 등을 노끈으로 묶은 '묶기' 연작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내년 3월28일까지 이승택의 60여년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이승택-거꾸로, 비미술'전이 열린다. 서울관 6~7 전시실과 야외 공간에서 이승택의 작품 약 250점을 볼 수 있다.
이승택은 193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났다. 1950년 월남해 1955년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했다. 그는 기존 조각계에서 쓰지 않았던 전통 옹기, 비닐, 유리, 각목, 연탄재 등의 재료로 작품을 선보이면서 기존의 조각·미술 개념에 도전했다. 전시 제목 '거꾸로, 비미술'은 이승택의 이런 도전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제7전시실에서 이승택이 그동안 선보였던 '묶기' 연작을 총망라해볼 수 있다. 그가 1958년 40개의 돌과 2개의 나무기둥, 노끈으로 만든 '고드랫돌'이라는 작품은 2013년 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에 소장됐다.
기성 미술에 대한 이승택의 끊임없는 도전과 예술실험은 1980년 무렵 '비조각'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된다. 이승택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으로 민속품, 고드랫돌, 석탑, 오지, 성황당, 항아리, 기와 같은 전통적 재료를 비조각의 근원으로 삼았다.
이승택은 1970년 전후에 바람, 불, 연기 등 비물질적 요소들로 작품 제작을 시도했다. 바람이 부는 상황, 뭔가 불 태우는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이른바 '형체 없는 작품'을 실험했다.
이승택은 1970년 '한국현대조각회전'에 대형 설치 작품 '바람'을 출품했다. 홍익대 빌딩들 사이로 100여m 길이의 밧줄을 걸고 180㎝의 헝겊 조각들을 묶어 매달아 바람에 펄럭이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서울관 건물 사이에 약 70m의 밧줄을 걸고 이승택의 '바람'을 재현했다. '바람' 아래 놓인 파란 구체는 1991~2000년대에 선보인 퍼포먼스 '지구 행위' 때 사용된 재료다. 이승택은 이때 한국·일본·중국·독일 등 여러 나라로 오가며 지구의 상징인 대형 풍선을 굴리는 퍼포먼스 '지구 행위'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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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의 실험 정신은 오랫동안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미술상을 받으며 그의 작업 세계가 본격적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이승택은 2016년 10월~2017년 3월 독일 뮌헨의 하우스데쿤스트에서 열린 전시 'Postwar: Art Between the Pacific and the Atlantic, 1945-1965'에 초청받기도 했다. 당시 65개국 218명 작가의 작품 350여점이 전시됐다. 한국에서는 이우환과 이승택만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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