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금은 꿈같은 얘기가 됐지만, 2년 전 남프랑스 여행을 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 중 하나가 엑상프로방스에서 방문한 책방이었다.
크지 않은 규모였는데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었던 듯싶었다. 어린아이가 바닥에 앉아서 동화책을 읽고 있고, 아이의 엄마는 그 옆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창문에서 비치는 햇살이 서가를 빽빽이 채운 책들을 비추고, 곳곳에 놓인 안락한 의자에 나이 지긋한 부부가 앉아 읽던 책을 잠시 무릎에 올려놓고 차를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평화롭고 격조 있는 풍경인가? 언젠가 풍광이 좋은 곳에 자그마한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만든 곳이었다.
그런데 나의 작은 소망이 참으로 순진하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독서인구의 지속적 감소세다. 2019년 국민독서인구 실태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권으로 전년 대비 각각 7.8% 포인트, 2.2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오락문화비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오락문화비 구성 항목 중 서적 구입비 지출은 2010년 이후 6% 이상씩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 다음은 구조적 문제다. 작은 동네서점은 도매상에서 판매가의 75~80% 선에서 책을 구입해 판매한다. 반면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들은 정가의 50~60%에 공급받는다. 10% 할인된 가격에 5%의 포인트를 주고 무료배송까지 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공급가부터 차별받고, 재정이 열악한 동네서점이 대형서점과 가격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얼마 전 방문한 동해안의 작은 책방 주인한테서는 이보다 더한 얘기를 들었다. 도매상에서 아예 책을 안 주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10% 할인받아 책을 구입해 비치해놓는다. 책 팔아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커피 등 음료를 팔아 임대료에 보태고 있다고 했다.
작은 서점의 소망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그나마 동네책방이 버틸 수 있도록 적지 않은 기여를 한 도서정가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부터 시행 중인 현행 도서정가제는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간행물을 도서정가제 예외로 두는 조항을 삭제하고 정가를 변경할 수 있게 했으며, 전자책도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도록 했다. 어디서나 같은 값에 책을 구매하게 되면서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는 이가 많아졌고, 전국적으로 독립서점 성격의 동네책방이 많이 늘었다. 1인 출판사에도 많은 용기를 줘 최근 몇 년 사이 지속적으로 출판사와 출간 도서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11월20일 재검토 시한을 앞두고 발표한 개정안에 따르면 도서전 판매도서ㆍ장기 재고도서를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하고, 전자책 할인율을 20~30%로 확대하도록 했다. 연재 중인 웹툰이나 웹소설도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 22조에 규정된 도서정가제는 판매자 간 가격 경쟁을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자율 경쟁 시장의 원칙하에서 이런 제도를 만들어 제한하는 이유는 도서를 문화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자산으로 취급해 다양한 도서를 출간하고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서다. 중소형 출판사와 동네서점에도 도움이 되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서적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취지와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도서는 어디에서든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도록 하면서 출판사는 언제라도 재량으로 정가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대로라면 도서전의 형식으로 대형서점의 할인 경쟁이 시작될 것이고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다. 겨우 버티고 있는 동네서점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소비자를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중심으로 한 수준 높은 커뮤니티 문화의 거점인 동네책방을 살리는 것 또한 민주시민사회의 문화복지 차원에서 중요하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독일과 프랑스처럼 도서정가제를 강화하지는 않더라도 현행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더욱 어려워진 중소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도서 공급률의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공공 도서관과 중소서점을 연계해주는 방안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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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 속에 10년 넘게 비영리로 운영해온 책방을 11월28일 폐점하기로 했다는 어느 책방 주인이 기억해달라는 문구가 귓전에 맴돈다. '책방 없는 나라, 희망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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