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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광복절에 다시 새겨보는 조세법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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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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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핵심어를 꼽으라면 '대표 없이는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조세(세금)법률주의가 아닐까 한다. 이는 세법에 규정한 것만 납세를 하겠다는 소극적 의미보다 국민의 대표자들이 합의한 세법이라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납세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성숙한 민주국가인지를 판별하는 표지(標識)다.


조세법률주의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 왕권에 맞선 투쟁으로 어렵사리 성취한 결과물이다. 역사책을 몇 장 넘기다 보면 이를 쟁취하는 데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1215년 영국에서 '세금 징수는 귀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라는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을 작성하면서 조세법률주의가 태동했다(이전에는 왕 마음대로 거뒀다). 이후 1628년 의회 동의(권리청원)와 1689년 의회 승인(명예혁명과 권리장전)으로 진화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금 부과권자가 왕에서 국민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교 영향에 따라 왕이 세금을 착취가 아닌, 공평하게 분담하기 위한 도구로 세금 규정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영국과 차이가 있다. 특히 1444년 세종은 전국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6등급, 작황에 따라 9등급으로 각각 부여해 총 54(6×9)개 등급으로 된 공법(貢法ㆍ토지세금제도)을 제정했다. 1485년 성종은 공법을 포함한 '경국대전'을 완성해 명실공히 현대적 의미의 조세법률주의를 완성했다. 이는 미국이 탄생하기 수백 년 전의 일이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 정책은 1895년 홍범 14조(洪範十四條)로부터 시작된다. 그 제6항은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해 언뜻 납세자를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는 탁지부에서 세금 부과를 관장하도록 해 세금 부과권자가 조선 왕에서 일본으로 사실상 넘어갔다. 이어 1910년 일본의 불법적인 병탄조약(倂呑條約)으로 일본 세법이 한반도에 압살적으로 적용되었다. 세금고지서 발급자가 아예 일본으로 바뀌었다. 과세주권을 상실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19년 한반도 밖인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돼 임시헌법을 제정했다. 그 제48조는 '조세를 新課(새롭게 부과)하거나 세율을 변경할 시는 법률로서 次(이)를 정함'이라고 적었다. 이는 현행 헌법 제58조의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한다'라는 규정과 궤를 같이한다.


해방 이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고 제90조에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세종의 세금 정신은 일제 식민지배 기간 가동되지 못했지만 상해 임시정부와 1945년 광복을 통해 다시 우리나라 세금 체계의 근간으로 작동하고 있다.


100여년 전 나라를 잃고 중국 상해로 피신한 그 험한 상황(크로노스)에서도 장차 조국의 해방을 믿어 의심치 않는 확신(카이로스)에 이르러, 해방된 조국에 적용할 세금 원리를 만들고 현재에 이르게 한 선열들의 수고와 혜안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한반도 절반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 헌법은 세금을 없앴다고는 한다. 하지만 거래 수익금 등 세금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서 징수를 한다. 법률로 규정해놓지 않았으니 노동당 자의대로 징수해 난맥상이 깊고 백성의 원성도 높다. 분단 상태가 장기화하는 한반도에서, 지금 우리는 통일을 염원하며 통일한국의 번영을 위한 세금 원리를 기획하고 있는가.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는 더욱 강한 법. 분발이 필요하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몫이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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