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사고 되풀이…후진국형 재난" 부산 동구 지하차도 참사, 예견된 인재
상습 침수 지역인데…통제 안하고 매뉴얼 안지켜
지자체 뒤늦게 사실 확인, 재난문자 발송만
6년전 우장춘로 사고 똑같이 되풀이
시민단체 "초량 지하차도 사고는 '인재'" 주장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강주희 인턴기자] 지난 23일 부산에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로 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지자체의 초동 대처 미흡으로 인명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폭우로 인한 사고가 아닌 사실상의 인재라는 지적이다.
부산에서는 과거에도 침수로 인한 인명피해가 발생해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전문가 견해도 있어 보다 실질적인 대응책이 요구되고 있다.
경찰은 지하차도 관리 주체인 부산시와 동구청 공무원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당시 쏟아진 폭우로 인해 동구 초량동 중앙대로와 충장대로를 잇는 길이 175m, 왕복 2차로의 '초량 제1지하차도'가 잠겨 지하차도에 진입한 차량에 타고 있던 50대, 60대 남성 2명과 20대 여성 1명이 숨졌다.
이날 부산 지역에는 오후 2시께 호우주의보가 발령됐고, 오후 8시에는 시간당 최고 80mm가 넘는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호우경보로 대체됐다. 폭우는 만조와 겹쳐지면서 빗물이 불어나 순식간에 지하차도의 2.5m가량이 물에 잠긴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오후 9시40분께 자체적으로 차량 통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차량이 지하 차도에 진입해 10시18분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하차도 출입구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침수 여부 등의 안내조차도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침수 전까지 지자체 차원의 지하차도 차량 통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지하차도 관할 동구청은 이날 오후 9시43분께 수정천과 동천 범람 위험을 알리는 재난 문자를 발송했고, 부산시도 사고가 발생한 이후인 오후 10시53분께에야 '지하차도 진입 통제 문자'를 주민에게 발송한 것이 전부였다.
◆ 침수 시 통제 매뉴얼 있었지만…사실상 무용지물
앞서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2월 '침수 우려 지하차도 통제 및 등급화 관리 기준'을 마련했다. 기상 특보에 따라 침수 위험이 있는 지하차도를 사전에 통제하고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침이다.
이 지침은 전국 145개 지하차도를 위험도에 따라 1∼3등급으로 분류해 통제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1등급은 예비특보, 2등급은 호우주의보, 3등급은 호우경보가 각각 발표되면 지자체가 즉시 지하차도를 통제해 인명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부산에는 2등급 지하차도가 3곳, 3등급 지하차도는 이번 사고가 발생한 초량 제1지하차도를 포함 29곳이 있다. 침수위험 3단계에 해당하는 초량 제1지하차도는 기준대로라면 23일 호우경보가 발효된 오후 8시께 지하차도를 통제했어야 한다.
그러나 부산시는 초량 제1지하차도는 물론 또 다른 지하차도 29곳도 전혀 통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관할 지자체인 동구청은 호우경보 발표 시 해당 지침을 시행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사고가 발생한 지하차도 관리를 직접 맡고 있지 않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에 나섰지만, 이미 인명사고가 발생해 사후 조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사고가 발생한 지하차도의 경우 그간 빈번하게 사고가 발생, 이번 대책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있다.
24일 참사 현장을 방문한 진영 행안부 장관은 "저희가 지하차도는 위험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기상특보에 따라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데 이런 사고가 났다"며 앞으로 기상청, 지자체, 경찰과 실시간으로 소통해 다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량 제1 지하차도의 경우 그동안 비 피해가 있을 때마다 상습 침수되던 지역이었고, 호우 경보가 발효되는 등 폭우에 따른 침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사전 통제 미진으로 참사를 막지 못하면서 비판은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 6년 전 우장춘로 지하차도 사고 되풀이, 배수펌프 용량부족…대책 마련 소용없었다
부산에서는 4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인명피해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2014년 8월25일 시간당 최대 130㎜ 폭우로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가 침수돼 당시 70대 할머니와 10대 손녀가 숨졌다. 당시 지하차도에는 배수펌프가 있었지만, 배전반(발전소 등으로부터 전력을 받아 운전 제어 등의 기능을 하는 장치)이 물에 잠겨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부산시는 이후 이런 침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부산 전역 35개 지하차도 대부분의 전기시설을 지상으로 옮기고 배수펌프 용량을 증설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조처에도 집중 호우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부산에는 모두 59곳의 배수펌프장이 있고, 별도로 지하차도에 29곳이 설치되어 있지만, 폭우로 인한 범람과 침수는 여전했다.
사고가 난 초량 제1지하차도에도 배수펌프 3개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용량이 분당 20t에 불과해 갑자기 밀려드는 빗물을 막지는 못했다.
또 다른 지하차도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산에는 100m 이상 길이의 지하차도가 7곳에 달하지만, 배수펌프 용량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잦아지는 여름철 폭우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두 개의 배수펌프장이 있는 동천은 지난 10일과 23일 두 차례 범람했지만 전기 장치가 물에 잠겨 감전사고 등의 이유로 작동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갑작스런 폭우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장소에서도 대형 인명피해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후진국형 재난…행정 무능으로 인한 인재"
시민단체들은 이번 참사에 대해 "행정 무능으로 인한 인재"라며 지자체를 향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부산·경남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인 부산경남미래정책은 26일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23~24일 동구 초량동 제1 지하차도에서 차량이 침수되면서 3명이 숨진 것은 자치단체 잘못에 의한 인재"라면서 "부산시와 16개 구·군이 도로와 지하차도의 배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호우경보 시 위험도가 높은 도로·지하차도를 즉각 차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언주 전 국회의원과 부산지역 10여 개 여성단체 등도 27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는 대로에서 내려가는 경사가 매우 급하고 길이가 길어 폭우가 쏟아지면 침수가 불가피해 대형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며 "호우로 인한 피해는 배수와 안전시설, 통제조치가 열악해 발생하는 후진국형 재난"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시와 구군, 경찰과 소방 등 관계기관이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폭우 시를 대비한 철저한 현장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침수사고의) 근본적인 문제는 도로평면설계가 잘못됐다는 것, 관리상의 문제 두 가지가 있다"면서 "우리나라 지하차도 설계의 대부분이 우수받이 구멍이 작다는 것이 문제다. 차로가 몇 개인가에 따라 우수받이를 다르게 설계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잘못되다 보니 폭우 시 우수 유입률이 너무 낮아 물이 빠지지 않고 지하차도로 흘러가 침수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을 때 현장직원들이 배수펌프 가동 시험을 바로 해서 물을 퍼내야 하는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면서 "매해 많은 비가 내릴 때마다 침수사고가 발생하는데, 결국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우수관리운영을 제대로 해야 하고 강수량이 많은 것으로 예상되는 날을 대비해 사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산경찰청은 28일 초량 제1지하차도 사고 관련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공식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전담 수사팀은 부산청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광역수사대와 피해자 보호팀, 법률 검토팀과 과학수사팀, 동부경찰서 형사팀 등 모두 71명으로 구성된다.
경찰은 지하차도 관리 주체인 부산 동구청 등 행정기관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 여부를 집중 수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동구청 소속 담당 공무원이 지하차도 통제와 관련한 행정안전부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식을 의뢰해 지하차도의 배수펌프에 대한 정밀 감식을 시행해 사고 당시 배수 설비가 설계 용량대로 정상 작동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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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참사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장마철 집중호우로 안타깝게 목숨 잃은 분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 말씀을 전한다"며 "부산 지하차도 사고를 큰 교훈으로 삼고 인명피해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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