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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야속하고 애석한/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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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을 20미터여 남기고(20여 미터일 수도)

버스가 막 지나쳐 갈 때

야구 모자 눌러쓴 청년이 뛴다

그 버스를 잡아타려고

나도 뛴다

다음 버스는 놓치지 않으려고

놓쳐서는 큰일이어서


나는 민감하지

20여 분과 20분여 차이에

그러면서도 자주, 때로는 아주

늦는다

그 끝에 끝장난 당신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끝!

이상 마치겠다고 했지

[오후 한 詩] 야속하고 애석한/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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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속하다'는 '무정한 행동이나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섭섭하게 여겨져 언짢다'라는 뜻이고, '애석하다'는 '슬프고 아깝다'라는 의미다. 즉 야속하다엔 상대방을 질책하는 마음이, 애석하다엔 대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스며 있다. 따라서 야속하다와 애석하다를 한데 엮어 쓰는 일은 실은 좀 어색하다. 그런데 시인은 왜 이 두 단어를 연이어 적었을까? 시를 보면 어쨌든 늦은 사람은 '나'다. 그리고 '당신'은 "그 끝에 끝장"났다. 그러니 '야속'하게 생각할 사람은 당연히 '당신'이다. 물론 '애석'은 '나'의 몫이다. 그런데 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의 마지막 두 행엔 '내'가 '당신'에게 야속하게 느낄 만한 이유가 적혀 있다. 이 부분만 보면 '당신'은 참 매몰차다. 그런데 정말 '당신'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끝!"이라고 선언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저 발화를 '내'가 적극 구성한 반어적 상황이라고 설정해 보면 무척 흥미로워진다. '당신'이 더없이 매정해야 오히려 '나'의 잘못이 전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발생하는 '애석함'은 운명에 육박하는 정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운명은 오이디푸스가 그랬듯이 피하면 피할수록 정확히 그대로 이루어진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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