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위기형 비둘기', 韓銀 총재가 확 달라졌다
코로나19 확산에 금융시장 출렁이자 반전
과거 외환·금융위기 경험 영향
'가보지 않은 길 간다' 평가도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미국만 따라한다고요?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총재로선 치열한 고민 끝에 쉽지 않은 결정들을 내리고 있을 겁니다. 한은이 한 번도 이런 조치들을 내놓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한국은행이 8조원을 직접대출해 저신용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할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하기로 한 20일 한 채권시장 전문가가 이 총재에 대해 평가한 발언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은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며 "이 총재가 모든 방식을 열어두고 대응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자 시장에선 어떤 충격이 생겨도 소위 '빽(중앙은행)'이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물ㆍ금융 복합위기가 이 총재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 총재는 평소 금융안정을 중시하고 통화긴축정책을 선호하는 '매파'로 분류돼왔다. 보통 한은 출신들이 그렇듯 신중한 성격이다. 시장에서 붙인 별명이 '미스터 면밀히'였을 정도였다. 지난 2월까지도 이 총재는 금리동결에 한 표를 던졌다.
그런 이 총재가 확 바뀐 시점은 3월부터다. 코로나19가 미국ㆍ유럽으로 확산하고, 미 금융시장이 출렁이며 연방준비제도(Fed)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이 총재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그는 당시 한은 집행간부 회의에서 "국별로 코로나19 위기상황에 대비해 가능한 카드를 모두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기준금리 '빅 컷(연 1.25%→0.75%)' 외에도 ▲금융중개지원대출 확대 및 금리인하 ▲전액공급방식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한국형 양적완화) ▲은행 선물환포지션 한도 25% 확대 ▲증권사 등 비은행금융기관 특별대출 등이 차례로 나온 대책들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도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인하한 지 3일만에 이뤄졌다.
이 총재가 빠르게 방향을 틀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 위기경험이 배경이 됐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통화신용정책을 관할했던 한은 부총재보였다. 당시 Fed는 기준금리를 0%까지 내린 후에도 추가 대책을 쏟아내곤 했다. 이 총재는 외환위기 수습이 한창이던 1999년엔 뉴욕사무소 수석조사역으로 일했다.
결국 '큰 위기엔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원칙이 생겼고, 이번에 '위기형 비둘기'로 빠르게 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진통 끝에 출범이 확정된 SPV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안 되는 방법 말고, 한은법상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며 집행간부ㆍ금융통화위원들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위기를 맞아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Fed도 2008년 회사채ㆍCP 매입기구(PMCCFㆍSMCCF, CPFF) 설립을 해 본 덕분에 이번 대응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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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은은 추가 충격이 없는 한 1차 SPV(10조원)는 충분한 규모라고 판단하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날 현재 BBB등급 이하 국내 회사채 규모는 총 4조5220억원이다. 한은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회사채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약 1조5000억원, CP의 경우 A3등급 기준 2조~3조원 수준이다. SPV 매입대상에 해당하는 기업에는 대한항공,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아시아나항공, 현대로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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