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의 청경우독] 정치를 바꾸고 싶은 이철희는 왜 금배지를 내려놨을까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사이에서 길을 잃다
그러나...
"정치를 바꾸면 우리 삶도 바뀐다. 바뀌면 바뀐다"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관점에서 살아야 한다.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정신을 갖되 현실적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2004년 팔순을 맞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밝힌 인생철학이다.
군부독재에 맞선 투사로 주목받는 정치인이 있지만 그의 행보는 한때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극단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극단의 진보 진영에서는 그를 현실과 타협한 배신자로, 극단의 보수 진영에서는 그에게 색깔을 뒤집어씌우기 일쑤였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한 평론가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극단의 평가와 관련해 "상인의 생각만 하는 이들에게는 빨갱이로 불렸고, 서생적 생각만 하는 이들에게는 배신자로 불렸다"고 회상했다. 이런 그는 10번 나와 4번 낙선한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해 평생 14번의 선거에 출마해 7번 떨어졌다.
그가 서거한 지 10년, 사뭇 다른 모습이 목격됐다. 끝이 없는 정쟁을 경험하며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일까. 대중의 주목 아래 영입돼 20대 국회에서 처음 배지를 단 두 명의 국회의원이 돌연 21대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들은 정치를 바꿔보겠다며 호기롭게 나섰다.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포부 실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자기 모습을 발견한 듯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불출마 선언에서 처절함과 회의감이 엿보였다. 한 의원이 불출마의 변을 내놨다.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작정이다.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어느 새 저도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
다른 의원은 이렇게 밝혔다.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사상 최악의 국회 책임을 지겠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회,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 대표적인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였던 이철희 의원과 표창원 의원은 이렇게 정치인으로서 여정의 끝을 예고했다.
이 의원은 잇따라 책을 내기 시작했다. 불출마 선언 즈음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원제 The Creation of a Democratic Majority)'라는 번역서를 출간했다. 1928~1936년 이른바 미국의 '뉴딜연합'을 소환한 것이다. 이는 정치참여를 높이기 위해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 책이다. 이번에는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부터 던지며 평소 생각이 담긴 책을 선보였다.
이번 책은 초선 의원으로서 국회에서 겪은 한국 민주정치의 현실을 정리하려는 듯 질문과 답으로 채웠다. 저자는 '정치가 왜 중요한가'에서 출발해 대통령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좋은 정치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국회는 잘 하고 있는가, 인사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등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대안도 제시한다. 저자는 더 많은 사람,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포용적 정치제도'에 대해 말한다.
정치가 왜 중요한가. 저자는 정치가 우리 삶의 규칙을 정하고 이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가 중요한 것은 이전의 어떤 정치로도 소화할 수 없는 약자나 보통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표하거나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좋은 정치다. 아무리 정책이 좋아도 정치가 그렇지 못하면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이 잘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차이는 정치가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진보 진영도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수와 대결해 이기는 데, 보수와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집착하지 말고 궁극 목표인 세상을 바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수적 우위와 타협의 산물이다. 저자는 "주고받는 게임, 서로 양보해서 절충하는 게임이 바로 정치"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하나로 집약된다. 그런 정치를 할 사람, 다시 말해 정치인이 핵심이다. 좋은 스펙과 됨됨이 그리고 대중적 인지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구를 대표할 것인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분명하게 아는 이가 유능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직장맘을 대표하는 정치인' '성적 소수자들을 대표하는 정치인' '취업난에 고통받는 청년들을 위한 정치인' '실향민을 대표하는 정치인' '다문화 가정을 대표하는 정치인' 등 다중심의 중심이 필요하다.
현직 국회의원 이철희는 책 후반부에서 논란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소득주도 성장론, 지난해 국회 혼돈 상태로 몰고 간 인사청문회와 패스트트랙 등 자기가 경험한 질곡의 과정을 들춰내 해체한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표현대로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 김 전 대통령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관점'을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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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구석구석 마지막까지 자기가 경험한 정치의 실상에 냉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기색이 역력하다. "솔직히 나부터도 우리 정치가 언제쯤 바뀔지 모르겠다. 그러나 멀지 않았다. 고단한 삶, 문제는 정치라는 생각을 많은 시민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바뀌면 우리 삶도 바뀐다. 바뀌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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