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낡고 쇠락한 출판사'. 문학사상은 사과문에서 스스로를 이같이 칭했다.


출판사는 죄송, 사과, 반성 등의 단어를 열 번가량 거듭 언급하며 잘못을 인정했다. 사과문에서 시대정신과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관행으로 이어져오던 폐습을 버리지 못했다고도 했다. 사과문을 읽으며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어려웠다. 한편으로 칼 앞에 목을 내놓은 장수의 모습도 떠올랐다.


잘못이 명백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낡고 쇠락한'이라는 대목에서는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오랜 세월 탑처럼 쌓아온 거대한 뭔가가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다.

이상문학상 사태의 근본 원인은 작가와 출판사가 추구해왔던 문학, 나아가 문장, 글의 가치가 쇠락하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안타까웠다.


속도가 중요해진 세상에서, 그래서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이 익숙해진 세상에서 책을 발간해 읽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지난해 말에도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양지 샘터가 지령 600호를 목전에 두고 사실상 폐간을 선언한 바 있다. 다행히 각지에서 돕겠다는 뜻을 전해왔고 지난 9일 샘터 지령 600호가 발간됐다. 김성구 샘터사 대표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오랜 시간 책을 발간해 유지하는 것이 기적이 돼버린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문학사상은 권위와 권력의 혼란스러운 경계 속에서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문학사상은 오랜 세월 글을 통해 갈수록 냉혹해지는 세상에서 단 한 줌의 온기라도 전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하기에 안타까움은 컸다. 애꿎게도 문학사상으로부터 사과문 메일을 받은 그날 오후 올겨울 들어 보기 드문 눈이 내렸고, 다음날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비이성적이고 어리석게도 또 한 번 세상의 온기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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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글이 과연 그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글보다는 말이 앞서는 시대, 감당하지도 못할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지, 혹 말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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