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영화와는 다른 맛…네 판타지의 주인공이 돼 봐
뮤지컬 '빅 피쉬' 리뷰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노란 수선화로 가득 찬 뮤지컬 '빅 피쉬'의 1막 엔딩. 주인공 에드워드 블룸이 아내 산드라에게 청혼하는 장면이다. 2003년 팀 버튼의 동명 영화 청혼 장면만큼 눈부시게 아름답다.
에드워드의 죽음을 표현한 2막 엔딩 장면은 더 환상적이다. 에드워드가 제목처럼 큰 물고기로 환생해 유유히 꼬리치며 아득히 멀어진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중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판타지는 그 뚜렷한 특성 때문에 관객의 호불호가 분명한 장르다. 빅 피쉬는 판타지 팬들에게 그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다.
극은 어린 아들 윌 블룸이 침대 위에서 출장 간 아빠 에드워드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잠시 후 무대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아들의 방 안으로 들어서려다 획 몸을 돌린다. 관객들이 처음으로 에드워드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에드워드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하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라는 생각으로 설렘과 흥분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치는 모습. 도입부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빅 피쉬의 얼개가 잘 드러난다.
빅 피쉬는 평생 아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심어주며 즐겁고 신나게 살라고 가르치는 아버지 에드워드와 어렸을 때 누구보다 아버지를 따랐지만 어른이 되면서 점차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아들 윌의 이야기다.
드디어 아들과 포옹한 아빠. 첫 얘기부터 뻥이다. "경기장에서 네가 경기하는 모습을 몰래 숨어서 봤지. 네가 아빠 때문에 긴장해서 홈런 못 치면 어떻게 해?" "축구였거든." 아빠는 잠시 당황하다 "축구에도 홈런이 생겼어"라며 얼렁뚱땅 상황을 모면한다.
아빠는 이처럼 입만 열면 썰렁하고 실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인물. 아들은 순진했던 어린 시절에 아빠의 이야기가 신나고 즐거웠지만 자라면서 점차 아빠의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아빠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을까. 아들은 아빠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사실을 좇는 기자가 된다.
이야기는 아들이 아버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그저 허풍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통속적인 형태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 통속적인 내용을 풀어내는 판타지적인 방식이 뮤지컬 빅 피쉬가 지닌 가치다.
빅 피쉬는 미국 소설가 대니얼 월리스의 1998년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 소설은 2003년 팀 버튼의 판타지 영화로 제작돼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
제작사 CJ ENM은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글로벌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초연하기까지 6년의 공을 들였다. 뮤지컬 빅 피쉬는 영화와 다른 판타지적인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제작사 측의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국내 뮤지컬에서는 보기 드문 '퍼펫(배우가 안에 들어가 연기하며 직접 조종하는 인형)'을 과감히 도입해 에드워드의 허풍스러운 이야기 속 주인공인 숲 속의 마녀, 늑대인간, 서커스단의 코끼리, 에드워드의 거인 친구 칼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퍼펫을 활용한 뮤지컬의 최고봉은 '라이온 킹'이고 공교롭게도 지난해 라이온킹 오리지널 팀이 내한해 국내에서 공연을 했다. '라이온킹'의 퍼펫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빅 피쉬'의 퍼펫은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동화같은 분위기를 표현하는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뮤지컬 빅 피쉬의 작가 존 어거스트는 한국 초연 무대를 보기 위해 지난해 12월 내한해 크리스마스에 열네 살 딸과 함께 관람했다. 관람 전 기자회견에서 그는 "묘하게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가족애를 이야기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뮤지컬 빅 피쉬의 무대 연출은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연말 레퍼토리 공연으로 기대감도 갖게 만든다.
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경쾌한 넘버(뮤지컬 노래) '이야기의 주인공'이 기억에 남는 것도 부모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네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 봐. (중략) 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면 세상을 구할 영웅은 바로 너. (중략) 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봐. 음악이 멈춰도 춤을 춰야 해. 날개가 꺾여도 바람에 몸을 싣고 날아. 용기를 내, 겁먹지 마, 지금이야, 출발해."
1막의 아름다운 엔딩을 장식하는 넘버 '수선화' 역시 노란색 이미지와 함께 계속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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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아들 윌은 누구보다 훌륭한 삶을 살지 않을까. 그에게 아버지는 '큰 바위 얼굴'이나 마찬가지였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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