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25일 사진과의 길고 깊은 연애가 시작되었다. 갓 스무 살 시골뜨기가 난생 처음 수동카메라 니콘 FM2을 들고 어린이대공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FM2가 '명기'였음은 물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선배한테 억지로 빌린 카메라는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 물건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광장공포증 증상과 비슷했다.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그 찰나! 또렷한 외침이 들려왔다.
"조선희 피사체에게 한 발짝 더 다가 가!! 한 발짝 더."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는 외침에 마치 마법이 걸린 듯 피사체에 한 발 더 다가갔다. 그러나 나에게 아티스트적인 큰 재능이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첫 촬영 후 현상을 직접 배우고 선배의 크리틱(critic)을 받고 난 좌절했다. 내 카메라 프레임 안에 커다랗게 있던 나의 피사체들은 온데간데 없고 뭘 찍었는지 알 수 없는, 그냥 다양한 사람들의 뒤통수만 사진 속에 가득했다. 난 분명히 내가 찾은 사냥감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스나이퍼였는데….
프레임을 처음 들여다보는 초보들은 프레임 속 초점 맞추는 네모만 들여다본다. 그것은 사진의 일부일 뿐이며 본인이 네 귀퉁이를 다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후 난 사진 찍을 때마다 나의 피사체로 한 발 다가가는 버릇이 생겼다. 어제 한 발 더, 오늘 한 발 더. 어느 순간, 난 나의 아름다운 피사체 눈속에서 헤엄치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해 인물사진 찍는 걸 더 좋아했고, 한 발짝 더 다가가서 보니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에 겁이 없어져 자연스레 아주 강한 인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가가 된 것이다. 외마디 외침 같던 그 말 한마디가 그후 30년 동안 사진가로 살아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생이 한두 가지 사건으로 좌우되지는 않듯 사진과의 질긴 사랑의 시작에는 셔터 소리도 한몫했다. 그해 서클 동기들과 겨울 열차수리공들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찍고 있었는데, 그때 난 이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여전히 초점 맞추는 것에, 노출 맞추는 것에 약했던 나는 초점과 노출을 조작하는 시간은 길고 숨 멎는 순간이었으며 내가 찍고 있던 수리공 아저씨의 표정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2~3초의 시간이었을 테지만 내겐 억겁의 시간이었고 마침내 눌러진 셔터의 철~컥 하는 소리는 터질 것만 같았던, 마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쿵쾅거리는 심장을 어찌 할 바 모르는 첫사랑 소녀의 심장을 환희로 가득 차게 만드는 소리였다.
아, 이 소리를 평생 듣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난 그 흔한 토익 시험 한 번 볼 생각, 취업 원서를 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월 60만원을 버는 사진가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 60만원, 내겐 먹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이었으며 엄청난 액수였다! 60만원만 번다면 사진을 절대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했다.
29살 겨울, 알고 지내던 프랑스 사진가가 전화를 걸어왔다. '썬!! 그 사진 썬이 찍은 거야? 그렇게 아름다운 눈빛은 처음이야.' 그랬다. 그리하여 내겐 배우 김민희의 묘한 눈빛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남았다. (사진제공=조아조아스튜디오)
원본보기 아이콘15년 전에 쓴 나의 에세이집에 셔터소리와 사진가로 살아온 이 에피소드에 관한 글이 실려있다. 난 이렇게 썼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이 행복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13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난 생각한다. 13년 그리고 17년이 더 지난 지금, 난 행복했고 불행한 사람이구나. 단지 하나에만 몰두한 나는 행복했고 동시에 불행했다고. 나도 사진 말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어땠을까? 더 행복했을까?
스물, 꿈을 찾았고 꿈꾸었고 서른, 그 꿈을 행했고.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다시 사진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꾼다.
패션사진가로, 상업사진가로 살아온 시간 위에 소위 말하는 파인아트를 하는 사진가로서의 시간을 보태기를. 죽을 때까지 셔터소리를 듣고 살기를. 사진만큼 여전히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 제일주의자'로 살기를.
사진은 말이다 사랑꾼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물건이, 풍경이, 사랑으로 가득 차 보이는 것들이. 그렇게 그 무엇이 존재해야 진정한 사진가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1990년 스무 살 조선희인 양 다가오는 2020년 오십 살 조선희도 사진과 사람들과 맘껏 사랑하고 살기를 또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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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사진작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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