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인간이 모두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가정한다. 이때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여기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택 가운데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를 예로 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약과 담배를 포함해 무엇에든 중독이 되는 선택은 전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찍이 중독 현상도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은 학자가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Gary S Beckerㆍ1930~2014) 교수다. 합리성을 전제로 한 경제학적인 분석의 틀을 이용해 중독이나 차별과 같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회적 현상을 분석한 공로로 그는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경제적인 선택이 때로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모든 재화에는 크든 작든 감정적인 내용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재화에 담긴 감정적인 내용은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다. 감정의 내용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에서 현재 사회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재화는 주택이다.
과거 가난하고 주택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대에 세를 살아본 사람들은 자기 집 없는 설움을 안다. 거기에 대고 투기를 해 집값을 올리고 돈벌이를 한다니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투기는 주택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한 걸음 물러서 보면 대상에 따라 투기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투기란 자산 가격의 변동을 통해 득을 얻고자 하는 경제 행위다. 기실 모든 자산 거래에는 적든 많든 투기의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주식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배당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당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투기를 하고 있는 투자자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세계적으로 볼 때 주식시장에서 투기를 통해 큰 부를 축적한 사람은 아마 부동산시장에서 같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물론 합법적인 경우이지만) 주식 투자를 통해 많은 부를 모았다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주식시장에서는 주택시장과 다르게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한 상품이 거래되기 때문에 주택보다 감정적인 내용이 많지 않은 것이다.
재화에 내포돼 있는 감정적인 내용 때문에 최적이라고 생각되는 정책보다는 전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정책이 선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주택 정책이다.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은 재화의 감정적인 내용만 보고 무엇이 투기의 본질인지를 인식하지 못한 무지한 정책이다.
투기는 장차 가격이 상승하리라는 기대(예상)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기대가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투기는 일어난다. 분양가상한제 확대, 강남 재개발(공급) 제한 등을 포함한 정부의 대부분 정책은 장차 주택 가격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정보를 끊임없이 시장에 흘리는 것인데 어떻게 투기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정부는 스스로 무슨 노름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서는 아예 대출을 금지하고 9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20%를 적용하는 등 이번에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라는 것은 부자들만 투기가 가능하게 하는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일 뿐이다.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꺾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주택시장 불안정화 방안'임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투기는 미래에 관한 것이다. 미래를 안정화하지 않고 투기를 잠재울 수 없음을 지적하고 싶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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