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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그들이 아닌 우리를 위한 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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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만 원 훔친 서민은 징역형, 수십억 원을 횡령한 재벌 총수는 풀려나는 판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나. 저렇게 취급받지 않으려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자기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경제ㆍ정치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을 절감할 것이다. 혹은 자녀에 대한 투자가 대안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능력 있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절대적 신봉, 그것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이 사회에 널리퍼진 상식이라는 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조국과 정경심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합법적 자기방어로 최소한의 죗값만을 치를 것이다. 양승태와 임종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법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가벼운 형을 그들에게 선고할지 모른다. 이를 목도한 우리는 또 한 번 생각할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밟고 올라서야 한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1대99가 아닌 20대80 불평등 담론'에 공감하면서, 법과 제도로써 공고히 쌓아 올린 성벽 안에서 '합법'으로 무장한 그들의 견고함을 본다.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양보를 선언할 때 비로소 1% 개혁도 가능해진다는 진단은 매우 예리하다. 그러나 20%가 자신의 몫을 내놓을 의지가 없는 세상에서, 그 20%가 주도하는 개혁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이며, 누구를 위한 개혁일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국은 말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권리라고, 당시엔 합법적인 일이었다고. 그러나 소환 일자를 검찰과 '조율'할 수 있으며, 어떤 불이익이 닥쳐올지 모르면서 검찰청 조사실에서 진술을 거부할 용기가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다. 80%는 그런 법률 지식도 조력을 받을 능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짓지도 않은 죄로 20년 복역하고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불편한 다리를 절룩이며 교도소 문을 나서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노력 없이 물려받은 돈과 권력ㆍ학벌도 능력이라 인정하며, 돈 없고 게으른 사람들이 그만한 불이익을 당하는 건 당연한 이치라는 비아냥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세상을 조국도 꿈꾸진 않았을 것이다.


이 냉혹한 능력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검찰ㆍ사법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하지만 20%의 상층을 차지하는 법조 엘리트들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왜 유전무죄냐'고 항의해도 그들이 체득하고 내면화한 법 체계에선 문제없는 일이라는 자신감이 그 밑에 깔려 있을 것이다. 무지몽매한 국민의 목소리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없다는 우월감과 시중의 여론 즉 국민의 법 감정을 애써 외면하면서 '양보할 수 없는 독립 영역에 대한 수호'라 여기는 사명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이 사회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80% 속에 흐르는 감성과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법조 엘리트들을 압박해야 함은 자명하다. 1%에 맞서 투쟁해온 조국과 같은 20%가 '우리 편'이었다고 믿은 순진한 착각 속에서, 세상은 조국과 조국이 되지 못한 계층으로 공고히 갈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사ㆍ사법기관에 대한 80%의 민주적 통제가 작동하지 않은 사회에서 경찰과 검찰이 그리고 법원이 국민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기억하고 있다. 검찰개혁뿐 아니라 사법개혁에 국민의 온 힘을 모을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것 외 80%가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신범수 사회부장

신범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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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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