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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유태오, 새로운 캔버스에 자유를 칠하다

최종수정 2019.10.17 10:46 기사입력 2019.10.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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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티고' 유태오...남다른 천분과 지성으로 예술세계 확장
'호기심' 촉매 더해 새로운 감각 일깨워 "다양한 문화 경험할수록 이해 폭도 커져"

[라임라이트]유태오, 새로운 캔버스에 자유를 칠하다


배우 유태오(38)는 촬영장에서 휴식 시간에 독서를 즐긴다. 요즘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브루탈리즘(양식화한 모더니즘을 타개하려는 1950년대의 새로운 움직임)'에 푹 빠졌다. 집으로 돌아가면 음식을 요리한다. 그가 직접 만든 샤퀴트리(돼지ㆍ소 등의 고기와 부속, 내장을 이용해 만드는 가공식품)와 치즈를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엄지척'이다. 영화 '버티고'에서 호흡을 맞춘 천우희는 "매력으로 한 가지만 꼽을 수 없을 만큼 다방면에 재능이 있다"고 그를 평했다.


남다른 천분(天分)과 지성은 그의 예술세계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다. 그는 호기심이라는 촉매를 더해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 표현은 조금 낯설 수 있다. 긴 무명생활로 경험이 많지 않다. 내면에 다양한 문화도 혼재됐다. 독일 교포 출신이다. 한국에서 거주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새로운 캔버스에 초점을 맞추고 알맞은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유태오는 계획보다 꿈을 좇는다. 그래서 반짝 뜨거운 반응에 현혹되는 법이 없다. 스스로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데 익숙하다. 영화 '레토'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배가본드' 등을 복기하면서도 그랬다. 고독과 끈기, 재능을 돌아보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고독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꼈다.


[라임라이트]유태오, 새로운 캔버스에 자유를 칠하다


'버티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업무실적과 말끔한 옷차림으로 이성으로부터 주목 받는 개발팀 차장 진수를 연기했다. 같은 팀 디자이너 서영(천우희)에게는 위안에서 상처로 기억된다. 진수는 서영의 감수성이 만들어낸 관념 대상으로 한정할 수 없다. 개개인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자유롭게 응변하는 주체적 존재에 가깝다. 자주적 자세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양하는 유태오와 닮았다.


-부모님이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셨던데.

"내가 태어난 1981년부터 1985년까지는 쾰른에서 식당과 빨래방을 운영하셨다. 식당에서는 케밥을 파셨다. 터키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렇게 돈을 벌어 귀금속상을 여셨다. 그런데 두 번이나 강도가 들어 라인 강변의 쾨니히스빈터로 이사했다."

-학창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나.

"사춘기 흔적이 곳곳에 묻은 작은 도시다. 반항적이고 낭만적인 소년이었다(웃음). 공부보다 농구를 좋아했다. 아버지의 영향 같다. 아버지는 1970년대 초에 한국에서 실업축구 선수로 활동하셨다. 라인 강변에 지은 작은 호텔에 축구선수들이 많이 찾아왔다. 김주성, 홍명보, 황선홍 등을 삼촌이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


-부모님이 지금도 호텔을 운영하시나.

"1995년에 홍수가 발생해 라인 강변과 인근 지역 주민 20만명 이상의 삶터를 삼켜버렸다. 우리 호텔도 침수돼 못 쓰게 됐다. 아버지는 재건을 포기하시고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 에이전트가 되셨다. 수원 삼성에서 뛴 산드로 등을 관리하셨다. 당시 나는 농구선수를 준비했다. 아버지께서 한국 구단들과 꾸준히 교류하신 덕에 한양대와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에서 합숙훈련을 할 수 있었다."


[라임라이트]유태오, 새로운 캔버스에 자유를 칠하다


-독일 생활이 '레토'에서 빅토르 최를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혼란한 정체성이나 구슬픈 기운 등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오디션에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서 좋은 점수를 받은 듯하다. 빅토르 최는 러시아에서 야성과 변화의 상징과 같다. 시적인 서정도 풍부했다. 이런 다채로운 면을 나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어린 시절에 내성적이었을 것 같다.

"열 살이 될 때까지 혼자 놀았다. 그래서 사춘기에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림형제 동화의 실제 배경인 지벤게비르게 숲속에서 지내며 조금씩 자아를 찾아갔다. 독일을 떠난 뒤에도 가치관이 흔들릴 때는 많았다. 특히 한양대 농구부에서 합숙훈련하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혹독한 훈련도 힘들었지만 선수들이 야구방망이가 부러질 때까지 맞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한국 사회에 사디즘 경향이 있는 듯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새로운 문화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독일에도 잘못된 문화는 많으니까. 스무 살에 건너간 미국도 다르지 않았고. 현지 사람들의 생각으로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적응은 물론 배우로 활동하는 데 그런 접근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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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생활이 꽤 긴 것으로 알고 있다. 힘든 나날을 버틴 비결이 농구하면서 터득한 끈기인가.

"그럴 수도 있다. 코트에서 꽤 질기게 버티는 포인트가드였으니까. 배우로 일하면서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살아남기 힘든 세계 아닌가. 먹고 살려면 치열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 경험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의 성향을 체득하는 계기까지 됐다. 2009년 뉴욕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오면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한국어 발음이나 연기에 대해 지적 받을 때마다 칼을 갈았다.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욕심이더라.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배우들이 내지 못하는 색깔을 더 갖췄다고 자부한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수록 이해하는 폭도 커진다고 생각한다. 배역도 좀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고."


-어느덧 한국인의 정서가 배인 게 아닐까.

"그런 것 같다. 끊임없이 도전하지만 때로 외톨이가 됐다고 느낀다. 그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따뜻한 이해와 응원으로 도움을 줬다. 작고 큰 만남에서 따스함과 안도감을 느낀다. 새로운 동력도 얻고. 내가 더 열심히 달려야 하는 이유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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