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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돈육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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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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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전 세계 육류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정부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전 세계 육류를 휩쓸어 담으면서 세계 육류가격이 급등 중이지만 그래도 한참 모자란다. 지난해 중국인이 먹은 돼지고기량은 5400만톤(t). 전 세계 소비량의 5배다. 1억마리 넘게 죽은 중국 돼지의 수급을 맞추려면 남아있는 전 지구상 모든 돼지를 잡아도 모자란다.


중국정부가 돼지 수급에 비상이 걸린 이유는 역대 왕조들 중 돼지고기 수급 안정에 실패하고 살아남은 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돼지고기가 주식으로 정착한 1000년 전 송(宋)나라 때 이후 "돼지와 양곡이 적당해야 천하가 편안하다"는 뜻의 '저량안천하(猪糧安天下)'란 말은 모든 왕조에서 이어져왔다.

중국인이 먹는 식품의 40%가 돼지고기일 정도로 쌀보다 많이 먹는 주식이다. 예로부터 고급으로 치부되던 양고기나 농사를 위해 포기됐던 소고기와 달리 돼지고기만큼은 매우 저렴했다. 이제 그 돼지고기를 개혁개방 이전 시절처럼 배급받는 지경이 되자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중국이 자존심을 내던지고 미국산 돼지고기 관세를 철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돼지고기가 왕조의 운명과 직결됐던 것은 중국 뿐만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스페인 '이베리코(iberico)' 돼지고기 역시 유럽사의 전환점과 연결돼있다. 원래 유목민들이 숲에 방목해 키우던 돼지를 뜻하던 이베리코는 주요 식량 중 하나였다. 그러나 5세기 기후 급변으로 이베리코 돼지들이 먹던 허브가 사라지고 탄저병이 돌자 코카서스 지역에 살던 훈족들이 게르만족이 살던 독일 땅으로 쳐들어왔고, 게르만족은 여기에 떠밀려 로마제국으로 남하한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 불리는 유럽사의 전환점은 이렇게 시작됐다.


돼지 연대기의 마지막을 장식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은 19세기 대영제국의 역사와 맞물려있다. 돼지를 이슬람 율법으로 금하던 사하라사막 이남에 돼지농장을 세운 영국인들은 1907년부터 퍼진 이 끔찍한 돼지열병을 겪고나서야 왜 돼지를 이 땅에서 금했는지 깨닫게 됐다. 이제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이에 따른 수급 불안정이 얼마나 무서운 연대기를 써내려갈지 전 세계가 숨죽이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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