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방 근처 산길에 작은 전통사찰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절집 앞에 차량출입차단기가 설치되었습니다. 여느 절 같으면 일주문 자리지요. 자주 지나는 곳이라서 더욱 낯설었습니다. 차단기 옆에 인터폰을 붙이고, 전화번호가 적힌 현수막을 달았더군요. 'D사를 방문하신 신도 분께서는 아래 번호로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연유를 짐작해봤습니다. '내방객이 많아서 몹시 수선스러웠던 게다. 절반은 등산객이었을 것이다. 좁은 경내에 자동차가 빼곡했겠다. 신도들 불만이 컸겠다.' 그래도 궁금증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신도들은 절 마당 깊숙이 차를 타고 들어가도 된다는 걸까. 신도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구분할까.'
각설하고, 사찰도 주차난입니다. 산문(山門)이 아파트 정문을 닮아갑니다. 출입자의 정체와 용무를 묻습니다. 통과시킬 만한 차인지를 확인합니다. 무등(無等)의 성역이 사람을 차별합니다. 물론 자동차는 죄가 없습니다. 모두 걸어 오르는 길에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비단 이 절 풍경만도 아닙니다. 서울 강남 어느 절에서는, 대웅전 코앞까지 차를 들이대는 사람도 보았지요. 그냥 두면 산신각까지도 차를 타고 올라갈 기세였습니다. 그의 눈엔 절간의 여백마저 차 세울 자리로 보였을까요. '차 내려놓기(下車)'가 그리 어려운데, 어느 세월에 '마음 내려놓기(下心)'를 배울까요.
이웃 종교들 사정도 비슷해 보입니다.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중요한 회의를 하러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휴일이라 막힐 염려는 없겠지 하며, 느지막이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웬걸. 하마터면 늦을 뻔했습니다. 목적지 근처 도로 절반은 벌써 주차장이고, 골목들도 트인 곳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일요일, 아니 '주일'날. 대형 교회 앞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호루라기와 경적 소리 속에서 교통봉사원의 수신호만 바라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 걱정까지 하게 되더군요. '예배는 제 시간에 시작될까? 일요일에 이 부근을 지나려면 이런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하마비(下馬碑)' 생각이 났습니다. 궁궐과 종묘, 왕릉 앞을 지키는 빗돌 말입니다.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누구든 말에서 내리라는 명령, 걸어 들어오라는 지시입니다. 왜 내리라고 하겠습니까. 천지간에서 가장 존엄하신 분의 영토, 자세를 한껏 낮춰야 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까닭입니다.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오늘의 왕과 지난 시절 임금들의 처소를 어찌 탈것에 올라 드나들겠습니까. 사람의 왕을 만나러 가는 길이 그럴진대, 우리가 믿고 따르고 모시고 받드는 크고 높으신 분들께서 머무는 곳임에랴! 문묘(文廟)나 향교 그리고 서원 앞에 공연히 하마비가 서 있겠습니까.
불교를 억누르던 조선시대에, 하마비가 세워진 절도 있었습니다. 왕이나 왕비와 인연이 있는 절이거나, 선왕들의 명복을 비는 소임을 맡은 기도사찰입니다. 굳이 사연을 들출 필요도 없습니다. 절은 '무상사(無上士: 부처의 별칭, 위로 더 이상 없는 존재)'인 동시에, 신과 인간들의 교사인 '천인사(天人師)'의 거처.
대웅전과 대성전과 근정전 주인들의 권위가 다르지 않고, 그곳들의 각별한 예법도 서로 닮은꼴입니다. 전지전능한 분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말씀과 은총을 나눠주시는 교회의 위엄 또한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 석가, 공자… 하나같이 길 위의 성인들. 그분들께서 우리에게 걸어오시는데, 우리도 걸어가 맞아야지요.
마음의 하마비 세울 곳을 헤아려봅니다. 차를 포기하거나, 멀찍이 차를 세우고 걸어야 할 장소지요. 생각해보니, 걸어가 손잡아야 할 사람과 걸어가 절해야 할 곳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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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 · 서울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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