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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Eye] "안녕, 나의 고향" 옛 아파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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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부터 잠실 진주아파트 이주 시작
둔촌주공아파트도 단지 기억하는 프로젝트에서 출판물, 다큐멘터리까지 제작

사진제공: 송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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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대한민국, 특히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지역의 재건축 아파트는 마치 인기 주식처럼 여겨진다. 때에 따라 가치가 급등, 급락하고 많은 사람들이 투자의 일환으로 갖고싶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들 아파트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삶의 터전이다. 1980년대 이후 서울에서 태어난 많은 젊은 세대는 '아파트'를 고향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아파트 키즈(apartment kids)'다. 빠른 속도로 도시 개발이 이뤄지고 가치가 급변한 곳일수록 원래의 형태를 잃어가는 데 대한 아쉬움이 커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새 아파트를 향하기 전, 자비를 들여서라도 자료를 수집하고 독립출판물 형태로 책을 만들어 '과거의 아파트'를 기억하려는 이들 세대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기 전부터 거주하던 곳을 떠나게 된 송경민씨도 그 중 하나다. 1993년 4월6일, 그는 서울 잠실 미성아파트에서 진주아파트로 이사해왔고 27년여를 거주했다. 그리고 진주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 27일부터 재건축을 위한 이주를 진행하고 있다. 송씨는 평생을 머문 보금자리에 대한 회고록을 오랜기간 준비했고, 지난해 '잠실 그리고 진주아파트'라는 독립출판물을 발간해냈다.

진주아파트 단지 내에 이주 개시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제공=송경민)

진주아파트 단지 내에 이주 개시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제공=송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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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초에서 중순까지 다른 단지에서는 볼 수 없는 벚꽃로드가 펼쳐진다. (중략)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명소다. 365일 중 2주 동안만 즐길 수 있는 축제지만 평소 매주 수요일에는 알뜰장이 서서 아쉬움을 달랜다." "놀이터는 총 4곳이다. 3동 앞, 9동 앞, 13동 뒤, 14동 앞이다. 이중에서 9동 앞과 14동 앞 놀이터만이 아이들이 자주 노는 핫플레이스였다. 14동 놀이터에는 우주선모양의 회전뱅뱅이가 있었고 대ㆍ중ㆍ소 미끄럼틀, 쇠사슬 그네, 구름사다리, 철봉, 시소 그리고 달팽이가 있었다." -'잠실 그리고 진주아파트' 중에서-


뛰어놀던 놀이터의 모래가 위생상 안전한 우레탄으로 바뀐 일과 시소와 그네의 위험요소와 함께 재미까지 함께 제거 돼 버렸던 기억, 창의의 공간이 의도된 시설물로 대체돼 버린 충격, 상가의 분식집과 편의점, 태권도 학원의 모습 하나하나를 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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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가 전하는 이주 현장의 특징 중 하나는 현란한 현수막과 골동품 매입 차량들이다. 성공적으로 시공사를 선정하고 새 아파트가 지어질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쁨, 껑충 뛸 새 집의 가치와 적지 않은 차익에 대한 기대가 뒤섞였다. 송씨처럼 오래도록 거주한 이들이 20년, 30년 만에 자리를 옮기면서 내놓을 물건을 기다리는 골동품상들도 단지 내를 왔다갔다 한다.

송씨는 이 책을 단순 '회고록'으로만 상정하지 않았다. 그는 도시설계를 전공하고, 현재는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도시공학도다. 그는 "6년 간 도시를 공부하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었는데, 재건축이라는 운명을 맞이한 평생의 보금자리에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면서 "잠실, 그리고 진주아파트를 중심으로 알아두면 좋을 도시설계 얘기들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실 진주아파트 주차장에 골동품 수집 차량이 주차돼있다.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 이주현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진=송경민)

잠실 진주아파트 주차장에 골동품 수집 차량이 주차돼있다.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 이주현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진=송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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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에 앞서 그간 거주해오던 공간을 추억하고 공유하려던 움직임은 '둔촌주공아파트'에서도 성공적으로 일었던 바 있다. 고향을 기록하려는 프로젝트로 시작된 독립출판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이인규)'가 그것이다. 둔촌주공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이 책은 크고 작은 반향을 일으키며 이제까지 다섯권의 책을 냈고, 일부는 2019년 현재에도 온라인 서점 '건축' 부문 인기서적 상위에 랭크돼 있다. 같은 배경으로 지난해 말에는 '집의 시간들(라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돼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새로 지어질 아파트 단지 내에 기록관을 조성한다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옥수13구역을 재개발 한 'e편한세상 옥수파크힐스'의 최신식 커뮤니티동에 예전 주택단지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내부 곳곳에는 과거의 모습을 추억할만한 사진들을 입주민들에게 기부받아 걸어뒀다. 송씨는 발간된 책과 관련해 "하루가 다르게 원래 있던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가 생겨나는 현대도시의 모습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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