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어떨까 지금
꽃잎은 터지고 또
부서져
너저분하게 마르고
열매 맺어서
매실은 익어 갈까 빗속에
빗방울 푸른
지금
어떨까 거기
구릉 밑
어장에 갈매기 떼
하늘에 또 바다에
한 놈이 물고기를 찍어 내
햇살에 치켜들고
또 한 놈이
가로채려고 내닫는
어떨까
지금 거기
섬 능선 앞에서 만나고
산 능선 뒤에서 포개는
거기
지금
해안도로에 유채꽃 누룩처럼 날리는
■이 시는 우리를 곧장 봄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 그 까닭으로 시에 그려진 정경들이 강력하게 봄을 소환하기 때문이라고 얼른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긴 하지만 온갖 봄 풍경들을 지면 여기저기에다 옮겨 놓았다고 해서 이 시처럼 순식간에 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시의 마법은 '지금'과 '거기'라는 두 단어에서 비롯한다. '거기'는 듣는 이에게 가까운 곳 혹은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곳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를 조금 변형해서 말하자면 이 시에서 '거기'는 독자가 시인과 더불어 이전에 함께 경험했던 어떤 장소로 특정된 곳이다. 그리고 '거기'는 '지금'과 만나 독자의 위치를 봄 쪽으로 바투 끌어다 놓는다. 물론 이 시는 '거기'의 상실감을 적은 것일 수도 있고, 근래에 발표된 작품이긴 하지만 지난봄에 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겨울에 미리 봄을 선물한 시인에게 먼저 고마운 마음부터 표하고 싶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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