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있는 상태서 유증 재산 포기…대법 "사해행위 아냐"

"채무 초과 경우에도 자유의사 존중 필요 있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설 기자] 채무자가 유증(遺贈·유언으로 재산을 증여하는 행위)받은 부동산을 포기하는 것은 사해(詐害)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사해행위는 민법상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감소시켜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장모씨가 채무자 조모씨와 그의 형제들을 상대로 제기한 사해행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원심의 판결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장씨는 2006년 4월 조씨에게 2억원을 빌려주고 같은 해 7월까지 갚기로 했다. 박모씨는 조씨에 대한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이후 조씨의 아버지가 2015년 4월경 사망하자 또 다른 채권자인 손모씨가 아버지 소유 부동산에 대해 조씨를 포함한 자식 4명의 명의로 4분의 1씩 상속을 이전하는 등기를 마쳤다.

조씨의 아버지는 1988년 5월 자신의 소유 부동산을 조씨에게 유증하는 내용의 공정증서를 작성한 적 있다.

하지만 조씨는 2016년 9월경 유증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유증을 받을 자는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으며 이러한 포기는 유언자가 사망한 때 소급해 효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씨는 "이미 채무초과 상태인 피고가 유증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채권자들에 대한 공동담보의 감소를 가져오는 사해행위"라며 나머지 상속인에 대해 지분이전등기 말소등기 절차 이행을 청구했다.

1·2심은 "수증자가 채무초과인 경우에도 자유의사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며 장씨의 소송을 기각했다. 대신 조씨가 빌린 2억원과 약속한 지연이자 25%는 장씨에게 갚으라고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결이 맞다고 봤다.

이설 기자 sse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