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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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엠(EDM)의 시대. ‘일렉트로닉’(electronic)이라는 용어가 아우르는 테크노 음악의 위상은 높고 영역은 광범위하다. 기원으로 올라간다. 신디사이저가 보인다. 독일 출신의 두 밴드가 우뚝 솟아 있다.


신디사이저 네 대로 음악을 제작하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뜻은 발전소. 내가 기억하는 크라프트베르크. 히트 팝송 대백과라고 불리던 카셋트 테잎 전집에 그들의 싱글 <방사능(Radio?Activity)>(1975년에 발매된 다섯 번째 앨범에 실림)이 끼어 있었다. 기계음의 반복,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전기 착신음, 규칙적으로 좌우 이동하는 ‘칙 칙’ 효과음, 건조한 보컬. 노래 제목이 방사능이 뭐야, 이상한 노래야. 아마도 이런 말을 뇌까렸을 것이다. 같은 시대에 아트 락이 있었고, 디스코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헤비 메탈이 천둥을 생산하고 있었다. 수많은 팝송들 사이에서 전자 음악이 시작되고 있었다.

신디사이저 때문에, 악기를 연주(play)하는 것이 아니라 작동(work)하거나 프로그래밍한다는 새 개념이 도입되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신디사이저를 이용해서 새로운 팝 뮤직을 선보인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신디사이저 사운드는 80년대 이후 우리가 경험한 뉴 뮤직과 유로댄스음악의 시조이다. 버글스(Buggles)가 선배들의 사운드를 이어받아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네(Video Killed The Radio Star)>, <테크노팝(Technopop)> 같은 본격적인 테크노 장르의 문을 연다. 반젤리스(Vangelis)의 <<쏘일 페스티비티(Soil Festivities)>>나 장 미셸 자르(Jean?Michel Jarre)의 <<산소(Oxyg?ne)>> 같은 프로그레시브 장르의 혁신적 세계 역시 신디사이저에 의해 이룩된다.


<다스 모델(Das Model)>을 듣는다. 반복되는 기계 드럼 소리에 신디사이저 선율이 덧입혀져 있다. 춤을 추기에는 느리고, 가만히 있기에는 간질거린다. 이들의 신스팝(Synthpop)은 흥겹다. 귀기울여 소리 하나하나를 청신경에 몰아넣는다. 전자음 뒤를 따라오는 랄프 휘터(Ralf H?tter)의 목소리가 또렷하다. 로봇, 컴퓨터, 인간 기계(man machine) 같은 음악의 주제가 선명해진다. 이번에는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장르의 선두주자인 독일 밴드 람슈타인(Rammstein)이 커버한 <다스 모델>이다. 신디사이저로 만든 드럼 비트가 메탈 기타 리프로 고스란히 바뀌어 있다. 아우토반(Autobahn)을 시속 16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느낌이다.

[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4]크라프트베르크와 탠저린 드림 원본보기 아이콘
크라프트베르크의 테크노 찬가 <테크노 팝(Techno Pop)>을 연다. 반복, 반복, 반복. “멈춤 없는 음악, 테크노 팝, 멈춤 없는 음악, 테크노 팝, 합성한 전자음, 세계 모든 곳에 인더스트리얼 리듬이 가득하다.” 입체파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ger)의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계와 인간의 조화일까. 나의 생각은 영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연작으로, 올해 개봉되었던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의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로 이어진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원작 <<2019 블레이드 러너>>의 영화음악을 맡은 반젤리스는 신디사이저로 검은 비 뚝뚝 떨어지는 묵시록을 완성했다.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여 독창적인 전자음악을 창조해낸 ‘발전소’가 보인다. 굴뚝에서 연기가 솟구친다. 터빈이 돌고 있다.


우리의 배터리가 충전되었다
지금 우리의 에너지는 가득하다
우리는 로봇이다
우리는 로봇이다


우리는 자동으로 기능한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춤춘다
우리는 로봇이다
우리는 로봇이다
―<로봇(The Robots)> 부분


드럼 머신의 강력한 베이스 사운드가 <보잉 붐 착(Boing Boom Tschak)>을 맥동(脈動)하게 한다. 가사가 의성어 ‘보잉 붐 착’뿐이다. 가사의 미니멀리즘을 실현하고 있는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이 <컴퓨터 사랑(Computer Love)>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크라프트베르크가 팝과 댄스로 좌표를 옮길 때, 탠저린 드림은 다른 방향의 음악을 추구한다. 그들은 프로그레시브로 나아간다. 17분 동안 나는 명곡 <패드라(Phaedra)> 안에 머물 것이다. 탠저린 드림의 음악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어둠과 공간이 필요하다. 불빛은 한 자루 초만으로도 충분하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을 감는다. 모든 세포를 열고 싶다. 단 한 순간도 소리를 놓쳐서는 안된다. 숨을 들이마신다. 허파를 채우는 소리. 부풀다가 빛으로 바뀌는 소리. 몸에서 빛이 새는 것 같다. 발광(發光)하면서 나는 떠오른다. 심해의 해파리. 어둠 속을 항해하는 우주선처럼 깜빡거린다. 언어는 무용(無用)하다. 순수한 음악이다. 가사가 없는데, 시가 된다. 순전히 음악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탠저린 드림은 물리적인 파동인 소리로, 의미와 가치가 요구되지 않는 순수한 전자 음향의 아름다움만으로, 시를 쓰고 있다.


[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4]크라프트베르크와 탠저린 드림 원본보기 아이콘
<스트라토스피어(Stratosfear)>가 이어진다. 몇 년 전, 평론가들과 좌담을 마치고 왕십리역 근처 바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좋은 음악을 많이 틀어준다고 해서 들어간 곳이었다. 음악을 신청한 후 말했다. 십 분밖에 안됩니다. 잠깐 침묵할래요. 30초 무렵부터 리듬의 분절과 선율의 드라이빙이 병존한다. 와, 와, 별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아요.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신디사이저. 소리가 아니라 음악이다. 귀를 잡아당긴다는 표현이 맞는다. 볼륨을 키워달라고 요청한다. 크기가 아니라 부피. 밀도와 무게가 상승한다. 아, 어둠 속으로 연기를 날려 보내고 싶다. 흡연하듯 음악을 마신다. 이 음악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다. 하구의 삼각지에서 바라보는 붉은 일몰이다. 뒤돌아보지 않는 방랑자이다. 돌아가지 않는 바람이다. 갑자기 휘발할 것 같은 그림이 지나간다.


작약 한 그루
모란인 줄 알았다 그래도 태연자약
함박꽃이라 그래도 태연자약
구십을 넘긴 할아버지처럼
구십이 다 된 할머니처럼
한낮의 햇살 아래 태연자약
나는 아직 못 가 본 저 세계
참 환하다.
―성선경, <민화 1>(<<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중에서) 전문


탠저림 드림. 귤처럼 영근 작은 꿈. “아직 못 가 본 저 세계”는 죽음일까. 누구나 가야 하는 저 세계가 “환하”게 열려 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진다. 강물이 바다에 도달했다. <<이성(Logos)>>이 시작되었다. 1982년 런던 더미니언 극장(Dominion Theatre) 라이브 앨범. 대중적인 곡이지만, 길이는 45분 7초.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청주의 충북음악사에서 카셋 테잎 ‘이성’을 샀다. 음악이 뭔지 잘 모르고 있었지만, 밴드 이름에 꿈이 있어서, 앨범 커버가 인상적이어서, 황인용의 ‘영팝스’에 출연한 성시완의 아트 락 소개 방송에서 이름을 들었던 것 같아서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7분이 지나고 있다. 이 대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세 번째 파트 ‘벨벳(Logos Velvet)’이 오로라처럼 펼쳐진다. 검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달이 보인다. 달빛이 일렁이는 잔잔한 바다. 신디사이저 선율이 물결친다. 감탄하고 감탄했지만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고, 나는 늙어가고, 음악은 시간을 거슬러 나에게 다가온다. 불멸한다. 제목이 로고스여서 그렇겠지만, 벨벳을 통과할 때, 단어 ‘철학’이 낯설지 않다. 저 너머로 인도하는 음악의 항적(航跡). 테이프가 늘어져서 못 들을 때까지 나는 반복 재생했다. 45분짜리 이 음악을 피에 용해시키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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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곳, 이곳이 아니라 저곳으로 가고 싶은 열망뿐이었다. 당신이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당신은 아니라고 부정하고 부정했다. 이 음악의 유일한 딕션(diction), 신디사이저로 내는 사람 목소리, “깨어나라!(Wake up!)” 이 말은 주술을 방불하게 한다. 음악이 시간 위를 활주한다. 앨범 <<로고스>>의 주제는 ‘이성’이다. 2015년에 죽은, 밴드의 리더 에드가 프뢰제(Edgar Froese)가 생각한 이성은 음악이었을까. 음악은 유일한 실재,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 있다. 음악과 나는 영원한 여행자이다. 26분이 지나고 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에코우즈(Echoes)>가 연상된다. 다시 시작이다. 우주로 이동한다. ‘탠저린 드림’호를 타고 환하게 열려 있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장석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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