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작가 르 클레지오 "서울은 수많은 이야기 탄생하는 상상의 도시"
서울 배경으로 쓴 소설 '빛나-서울 하늘 아래' 출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가 14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신간 '빛나-서울 하늘 아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서울은 상상이 가능한 도시에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공존하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움직이는 도시입니다."
프랑스 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작가 르 클레지오(77)가 서울을 무대로 쓴 소설 '빛나-서울 하늘 아래(이하 빛나)'를 쓴 배경을 이같이 소개했다. '빛나'는 열아홉 살 소녀 빛나와 죽음을 앞둔 여인 살로메가 함께 떠나는 도시 상상 여행을 그린 소설이다. 번역은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가 맡았다.
클레지오는 1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10년 정도 서울을 자주 오가며 뭔가를 쓰고 싶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소설을 쓰게 됐다"면서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대담한 시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들은 이야기가 이번 소설에 많이 녹아 있다"면서 "그중 하나는 경찰 출신의 남자가 어릴 때 38선을 넘어왔는데, 어머니가 비둘기 한 쌍을 데려왔고 세월이 흘러 이들이 고향인 북쪽 나라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고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소망이 실현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썼다"고 했다.
소설은 하나의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이야기가 엮인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 빛나는 대학에 갓 입학한 전라도 어촌 출신 소녀다. 그녀에게 서울은 낯설고 복잡하고 외로운 곳이다. 빛나는 우연히 불치병을 앓는 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집 안에 갇힌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살로메는 빛나와 함께 그의 이야기 속으로 상상여행을 떠난다. 북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비둘기를 키우는 아파트 수위 조씨, 절망에 빠진 이웃을 구하는 미용실 임 원장과 키티, 보육원에 버려진 아기 나오미와 간호사 한나, 탐욕스런 이들의 희생양이 되는 아이돌 가수 나비, 그리고 빛나를 좇는 얼굴 없는 스토커 등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는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빛나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클레지오는 "빛나에게도 서울은 낯선 도시"라면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상상해서 들려주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들 사이에 애정이 생기고 도시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소설 제목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누군가 '언젠가 서울에서 다시 만나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영감을 받아 지은 것"이라면서 "(서울 하늘 아래라는) 말이 굉장히 낙천적인 메시지"라고 말했다.
각 이야기에는 작가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한국의 전통과 종교, 역사, 세대갈등, 남북문제, 정치사회문제, 음식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 있다. 신촌과 이대입구의 골목길과 방배동 서래마을, 강남, 오류동, 용산, 홍대, 당산동, 오류동, 과천 동물원, 충무로, 종로, 명동, 영등포, 여의도, 인사동, 남산, 잠실, 한강 등 서울의 면면들을 그만의 시선으로 녹여냈다. 그는 "남쪽 주택가와 서민들이 사는 동네, 대학가 등 서울의 모든 구역을 좋아한다"면서 "도시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나는 서울의 하늘 밑을 걷는다. 구름은 천천히 흐른다. 강남에는 비가 내리고, 인천 쪽에는 태양이 빛난다. 비를 뚫고 북한산이 북쪽에서 거인처럼 떠오른다. 이 도시에서 나는 혼자다. 내 삶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237쪽)
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클레지오는 1963년 스물 셋의 나이에 첫 소설 '조서'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1980년 '사막'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문학대상을 수상했고, '황금 물고기' '우연' '폭풍우' 등을 비롯해 40여권의 작품을 썼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클레지오는 독학으로 한글을 깨칠 정도로 한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2001년 대산문화재단과 프랑스대사관이 주최한 한불작가 교류행사에 참석 차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 수차례에 걸쳐 한국을 오갔다. 2007년 이화여대에서 석좌교수로 지내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더욱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2011년엔 제주도 명예도민으로 위촉됐으며 지난 10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 '폭풍우(서울셀렉션)'를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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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은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이라면서 "고층빌딩과 첨단기술로 인한 인간성 상실은 좋지 않지만, 번화가 뒤에 숨은 좁은 골목길과 한적한 언덕길, 작은 집과 카페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 사람들이 좋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은 한글판(서울셀렉션)과 영문판(빛나: 언더 더 스카이 오브 서울(Bitna: Under the Sky of Seoul)'으로 동시 출간됐다. 작가의 모국어인 프랑어판은 내년 3월 프랑스에서 출간되며 스페인어·이탈리아어판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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