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아키코 스와나이 리사이틀
런던 위그모어홀(545석, 1901년 개관), 도쿄 긴자의 오지홀(315석, 1992년), 베를린 피에르 불레즈홀(입석 포함 682석. 2017년)은 21세기 클래식 거점 도시들을 대표하는 ‘실내악의 전당’들이다. 이곳들은 관현악 콘서트홀에 딸린 아트센터 내 부속 시설이 아니라, 영화의 시네마테크처럼 도시가 실내악으로 숨쉬기 위해 마련된 독립 공간이다.
2017년 서울을 대표하는 ‘실내악의 전당’은 금호아트홀(390석, 2000년)이다. 공간의 음향조건(어쿠스틱)과 기획 프로그램의 순도, 오직 실내악으로만 한 시즌을 끌어가는 신념에서 여타 국공립 기관과 대기업 운영의 공연장들과 구별된다.
올해 여러 금호아트홀 기획 연주 가운데, <베토벤의 시간 '17'20'> 시리즈가 유독 눈에 띤다. 베토벤(1770-1827) 서거 190주년인 올해부터 탄생 250주년인 2020년까지 베토벤이 남긴 다양한 범주의 실내악을 국제적 아티스트의 기량으로 감상하는 자리다. 오늘(28일)은 일본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아키코 스와나이가 베토벤이 남긴 열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2·5·6·8번을 가네코 요코의 피아노 반주로 함께 한다.
1990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와나이(1972년생)는 고토 미도리(1971년생)와 더불어 아시아 클래식의 수준을 입증하는 선두에 섰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량을 이웃나라 한국에서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를 비롯해, 일본 음악가의 내한 공연이 거듭 흥행에 실패하면서, 공립 악단이나 축제, 문화재단 초청이 아니면 명성있는 일본 연주가를 직접 보기는 어려워졌다. 미도리도 독주회는 2004년이 마지막이다.
스와나이가 한국을 찾은 경로도 KBS 교향악단 협연(2002·2008·2016) 아니면 서울 스프링 실내악축제(2017) 뿐이다. 2000년대 중반 파질 사이와 함께 하는 듀오 리사이틀이 추진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무산됐고, 독주회로는 이번이 첫 방한이다.
1990년 한국이 신동(神童) 사라 장(1980년생)의 출현에 들뜰 무렵, 일본은 파가니니 콩쿠르(1988년 2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89년 2위)에 이어 차이콥스키 경연을 재패한 스와나이를 통해 달라진 국격을 확인하고자 했다. 열도를 방문하는 유럽·미국의 명문 악단 협연에 스와나이가 집중적으로 투입됐고, 스와나이는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을 거쳐 파리에 근거를 두면서 점차 예술적 나이테를 늘려 나갔다.
2000년 베를린 필에 데뷔하고 2003년 불레즈 지휘의 말러 청소년 교향악단 협연으로 루체른 페스티벌에 데뷔하면서 스와나이는 일본 투어에만 합류하는 흥행 연주자의 틀에서 탈피했다. 현역 지휘자 중에선 발레리 게르기예프, 파보 예르비의 지원이 강력하며 펜데레츠키·맥밀란·살로넨의 현대 협주곡을 일본 초연하는 데 앞장선다. 동일본 지진으로 낙심한 자국민을 위로하는 명분으로 2013년부터 ‘니폰(Nippon)국제 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이국적 외모에 사인회를 사양하는 터라 일본 관객들은 스와나이에 대한 접촉과 정보에 목말라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대중지들이 재산세 탈루 의혹과 결혼·출산 관련 루머를 쏟아내면서 순탄했던 음악 활동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스와나이는 2010년대 들어 연주회수를 줄이는 대신, 공연의 품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동 방향을 선회했다.
스와나이를 직접 만나면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에 먼저 놀란다. 무대를 등퇴장하는 걸음걸이부터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시선 처리까지, 겉으로는 왕족의 기품을 연상시키지만 주변인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무대 뒤의 모습이 음악에 그대로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테크니션이라기 보다 감정을 중시하는 현악주자다. 가슴에 일렁이는 심상의 변화를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실어서 관객에 전달하는 전체 과정이 청각적 감흥 이상의 영감을 자아낸다.
스와나이가 밝힌 성숙의 계기는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 시절, 학점 교환제도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 사상사를 배우면서다. 본래 음대생이 사회 과학을 노크한 연유는 테크닉만으로 예술이 완성되지 않음을 깨닫고 출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스와나이는 정치 이론의 내용보다 악기 연습 때는 쓰지 않던 두뇌 활동의 원리를 점검하면서 결국 악곡을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 하게 됐다. 반복 연습으로 악기에 도전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를 연구할 줄 아는 두뇌가 됐고 고전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야가 트였다.
그래서 음반으로 이미 출시된 스와나이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면 추상적이면서 모호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식의 접근대신 무엇이든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려는 서방인의 의욕이 눈에 선하다. 수천 번의 스윙을 통해 완벽한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동시에 투수의 심리를 정독하려는 일본 야구선수의 모습이 스와나이의 베토벤 소나타에 보인다. 국적에 대한 편견만 버린다면 수줍은 미소로 관객과 눈을 마주치려는 스와나이의 참모습을 국내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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