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균 시인

오석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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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기린을 만나는 법'은 요컨대 '그대'를 향해 부는 바람의 연가곡이다. 시인이 쓴 구절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이 시집은 "어떻게 불어도 그대 곁으로 흐르는 바람"('직지사 가는 길')이다. 보라. 시집의 어느 면을 펼쳐 보아도 바람은 분다. 그 바람은 '핏줄을 따라 쉬엄쉬엄 비탈길'을 올라('알약 한 봉지') 저 '미시령을 넘어'('고장 난 햇살') 시인이 살고 있는 '영랑호'에 도착한 "빈 바람"이다('저녁 밥상을 차리며'). 그 바람은 "그냥 툭 치고 간 것 같은데" "무지 아프다"('꽃 지는 날 2').


왜 그러한가. 일단 "시간은 바람처럼"('가을 그리고 낙엽') 흐른다. 바람은 혼곤한 새벽잠을 깨우고('단추를 달며') 오후의 햇살 또한 "바람을 타고"('잠자리') 흐른다. 그러나 "지워진 기억 사이로"('잠자리를 만나는 법') 오가는 바람은 "한쪽으로만 익숙하게 흘러"('화진포 가는 길 2')간다. "지난봄 스치던 바람"은 가을 '억새밭' 사이로 여전히 불고('가을 멀미') "화암사 유월 밤바람은 아직 차"갑고('나무 반딧불') "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울음소리"는 언제나 겨울이다('겨울이 오는 소리'). 그러니까 바람은 어떤 기억에 매여 있고 어느 한곳에서 불어오고 불어 간다.

시인은 그런 바람을 따라 "오늘은", 아니 실은 오늘도 "어디까지 걸어가 본다"('가을 당신'). 그곳은 때로 '사천항'('사천항에서')처럼 특정 지명이 적시된 경우도 있지만, "그대 냄새"('기린을 만나는 법')의 출항지이며, 그런 맥락에서 그대가 예전에 있었고 지금 있고 앞으로 있을 혹은 있어야 할 곳이라면 "어디"이든 모든 곳이며, 세상 곳곳에 편재하는 그곳은 "어디"이든 "아린 삶을 증거"한다('파를 썰며').


[Encounter]오석균 시집 <기린을 만나는 법> 원본보기 아이콘
그래서 이 아름답고 안타까운 바람의 연가곡은 "바람보다 먼저 그대 사랑한 소나무 둥치 사이"('안목항에서')를 지나 "종로 3가 지하철역 오후 5시 40분"('바다가 설악에게')에도 "가난한 마음들"이 모인 "광장"에도('파를 썰며') 흐르고 스민다. 이런 바람을 두고 그리하여 "네가 봄이다"('개나리')라고 말해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처음은 아니었으나" "가장 멀리 기억하리"('등 뒤에서')라는 이 시집의 마지막 문장은 "길마다 늘어선 하얀 손들"('기린을 만나러 가는 길')을 향한 순정한 결의이며, 어쩌면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의 모두일 것이다('양파를 썰며').

'그대'라는 시어가 밟히고, '떠나감'이 느껴지고, 이 떠나감이 '죽음'과 만나는 것 같다. 그가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 비가 오지 않는 나라에서 빗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 그가 '쪼다' 같은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 어쩌면 그것은 '그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감정이 동일한 무게로 평생 시인을 짓누르지는 않을 것이다. 몰아치고 있는 관성이 지금 현재 그만큼 지독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불어도 그대 곁으로 흐르는 바람"처럼 말이다.


문학평론가 문종필은 해설에 "오석균 시인의 마지막 시편에서 '그대'는 떠난다. 시인은 '그대'의 '허한 등판'을 쳐다본다. 생전에 단 한 번도 쓰다듬어 주지 못한 허한 등판. 허한 등판은 '굽고 더 굽어' 있다. 굽은 등을 드러내 보이며 그대는 떠난다. 그대가 떠나는 날은 몹시 추웠나 보다. 추위가 그대의 체온을 잡아먹는다. 홀로 떠나는 그대. 그 등을 오래도록 쳐다보는 나.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는 나. 어쩌면 이 시집은 '그대' 때문에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대를' 핏줄에 새기기 위하여"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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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충청남도 공주에서 자랐다. 1996년 <문학 21>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기억하는 손금>이 있으며, 수화책으로 <프리미엄 수화>(공저)가 있다. 현재 속초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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