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나는 너에게 '어떤' 말을 하고 만다
 '어떤' 말을 하고 나면 '어떤' 말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닌데
 우리는 입을 벌린다
 입을 다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후 한 詩]어떤 귀가/한인준
AD
원본보기 아이콘
 무엇이 말하는 걸까
 내 얼굴에는 언제나 '어떤' 입이 놓여 있다
 입속에는 '어떤' 집이 놓여 있다
 현관문을 돌린다
 이곳으로 아무도 도착하지 않는다
 식탁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는다. 밥을 먹다가 또
 무엇을 말했던 걸까
 내 곁에 둘러앉은 '어떤' 침묵들
 '어떤' 말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말로도 말하지 않는 우리가 대화를 한다

AD

 
■그래, 우리는 '어떤' 말을 하기 시작했지. 그 최초의 '어떤'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번 시작한 '어떤' 말은 자꾸 '어떤' 말들로 이어져 나갔지. 날씨는 어떻고 휴가는 어떻고 어제 본 길고양이의 무늬는 어떻고 최근 개봉한 영화는 어떻고, 그런 '어떤' 말들을 했지. 너도 했고 나도 했지. 내 입은 뻥긋거렸고 네 입은 재잘거렸지. 입들이 '어떤' 말들을 했지. '어떤' 말들이 '어떤' 말들을 끊임없이 쏟아 냈지. '어떤' 말들로 지어진 집. 그 속에서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혼자 "조용히 밥을 먹"고 씻고 자고 일어나 출근하고 대화도 하지만, 그곳은 "'어떤' 침묵들"로 둘러싸인 집. 너는 너의 침묵 속에서 나는 나의 침묵 속에서 '어떤' 말들을 여전히 하고 있지. "'어떤' 말로도 말하지 않는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지.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