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야기]동 페리뇽은 왜 샴페인의 대명사가 됐나
동 페리뇽과 루이 14세 이 두 사람이 같은 나라에서 같은 해(1638년)에 태어나 같은 해(1715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전에 둘이 만난 적은 없지만, 한 사람은 샴페인의 명성을 얻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절대왕정을 구축했다.
◆동 페리뇽 & 루이 14세= 동 페리뇽은 20세에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가 돼 29세부터 랭스에 있는 오빌레 수도원에서 일하기 시작해 수도원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와인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와인을 잘 만들고 사업적인 수완도 좋아서 수도원의 포도밭을 넓히고 수도원의 와인 가격도 주변보다 네 배나 비싸게 받을 수 있었다. 또 레드와인 품종으로 화이트와인을 최초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가지치기를 짧게 해서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줄여서 와인의 질을 높였으며, 기온이 낮은 아침에 수확해 아로마를 보존하고, 포도밭에 압착기를 설치하고 수확 즉시 압착해 주스를 짰다. 그러면서 포도밭을 구분해 와인을 별도로 담그고, 나무통보다는 유리그릇에 와인을 보관해 와인의 신선도를 유지했다.
사실 동 페리뇽이 만든 와인은 신선한 레드와인이 대부분이었다. 루이 14세는 이 와인을 프랑스 최고의 와인이라면서 즐겨 마셨고, 이에 귀족들도 즐겨 마시면서 덩달아 그가 개발한 발포성 와인, 샴페인의 명성이 올라갔다. 스파클링 샴페인은 이후 몇십 년이 더 흐른 다음에 유행하게 된다. 1715년 루이 14세가 죽은 후에 루이 15세의 섭정을 맡은 오를레앙 공작이 스파클링 샴페인을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때부터 샹파뉴(샴페인) 지방에서 스틸 와인이 스파클링 와인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700년대 말까지 샹파뉴 지방 와인의 90%는 스틸 와인이었다.
◆스파클링 와인은 누가 만들었나= 일반적으로 동 페리뇽이 샴페인을 처음 만들었다고 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시기를 정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단 한 가지, 스파클링 와인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유리병이 나온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국에서는 1600년대에 석탄을 태워서 얻은 고열로 강한 유리병을 만들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먼저 만들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나무통에 든 프랑스산 수입 와인이나 자국의 와인을 유리병에 넣고 밀봉시키다가 실수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또 1662년 당분을 첨가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영국의 크리스토퍼 메렛(Christopher Merret)의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샴페인의 원리는 1800년대 후반에 파스퇴르가 알코올 발효와 탄산가스의 관계를 규명하면서 알려졌지만, 본격적인 스파클링 와인의 시작은 1700년대 후반으로 보고 있다. 이때도 과학적인 원리를 확실하게 모를 때라서 우연한 기회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821년 오빌레 수도원의 그로사르(Grossard)가 동 페리뇽을 샴페인 발명가로 추대해 동 페리뇽뿐 아니라 오빌레 수도원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그리고 1937년에는 모엣 샹동에서 최고급 샴페인을 선보이면서 동 페리뇽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기 시작해 동 페리뇽은 샴페인의 발명가이며, 또 고급 샴페인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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