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된 처방 더 큰 화 부를수도

- 거대한 빚 만든 경제엘리트가 고통 분담해야

[임철영의 청경우독]거대한 속임수 '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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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2017년 한국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40.4%인 682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추정치다. 2000년 GDP의 17%(111조) 수준이었던 국가채무의 비중이 17년 만에 40%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섬뜩한 예상이다. 이를 같은 기간 국가채무의 규모로 환산하면 같은 기간 6배 이상 증가한 수준. 여기에 비금융공기업의 부채를 더하면 부채의 규모가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빚'은 개인은 물론 공공재정을 다루는 정부에도 부정적인 개념이다. 수차례의 세계경제 침체기에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갚아야 할 돈에 대한 각종 압박은 운신의 폭을 줄였고,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선택을 가로막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국가부채는 이제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한 주제로 자리 잡았고 어떻게 든 해결해야 한다는 막연한 인식의 확대로 이어졌다.

국가부채에 대한 높은 관심과 우려는 자연스럽게 '긴축(austerity)'에 대한 논의로 흐르게 마련이다. 미국과 유럽국가가 그랬고 논쟁은 이들 국가에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앞세운 케인스 주의와 시장의 기능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신자유주의의 대립이 새 국면을 맞은 것이다. 이미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정책 확대 기조를 '성장 친화적 재정 건실화'로 바꿨고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국가들이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긴축을 둘러싼 고민과 논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한국의 국가부채 수준이 다른 경제협력기구(OECD)에 비해 낮은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영논리에 갇혀 '부채'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했던 탓도 있다. 장기 불황과 인구구조 변화가 빚어낸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채라는 개념의 근저에 자리 잡은 막연하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중요한 '긴축'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악은 반성적 논의 없이 '긴축'을 무작정 수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상황이다. 한국도 국가부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긴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빚을 줄이기 위해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넘어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를 분석하고, 국가부채의 성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더 나은 대안을 서둘러 찾아야 할 시기다. 물음은 여러 가지다. 국가부채의 원인은 무엇인가. 긴축 이외에 대안은 없는가. 어떤 긴축이 필요한가. 긴축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정책은 무엇인가.


날 것의 가공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마크 블라이스 미국 브라운 대학교 국제정치경제 교수가 쓴 '긴축'은 모종의 아이디어를 구해볼 수 있는 책이다.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The History of a Dangerous Idea)'라는 부제가 붙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국가들이 선택한 경제정책의 변화가 실패한 긴축의 역사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고, 상당부분 국가부채에 대한 편견과 적절치 않은 이론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게 이 책의 골자다. 저자는 국가부채 위기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온 맹목적 긴축론자들의 주장이 더 큰 불황을 야기해 엉뚱한 피해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일부 유럽 국가들이 긴축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거대한 속임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피그스(PIIGS) 국가라고 통칭되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재정위기의 원인이 방만한 재정운용에서 비롯됐고 무엇보다 복지 지출이 '원흉'으로 꼽힌 것은 본질을 호도한 진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사실 유럽 주요 국가의 국가부채가 급증한 배경은 2008년 위기를 맞았던 은행을 살리기 위해 들어간 재정 때문이고, 그리스 사태를 시작으로 폭등한 국채 이자율 역시 엄청난 레버리지를 일으켜 국채를 사들인 투자은행들의 거대한 모럴해저드(moral hazard) 때문이라는 진단에서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과 복지에 기대 생활을 유지하는 애먼 사람들만 고통을 받았다.


"애초에 재정정책과 복지 등 공공지출은 폭등한 국채 이자율과 별로 관련이 없었다… 긴축은 은행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행됐다… 현재 하위 소득 계층은 상위 계층이 초래한 문제의 해결 비용을 내라는 불공정한 요구를 받고 있고 상위 소득 계층은 책임을 모두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자는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애덤스미스, 오스트리아 학파 등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친 고전 이론에 이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20세기 중반 이후 '긴축'의 지성사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특히 노동개혁과 경제 구조조정을 동반하는 이탈리아 보코니 학파의 '확장적 긴축론'에 주목하고, 이 학파가 제시한 긴축을 통한 경제회복 사례는 사실 또 다른 동력이 작용한 결과이며 대부분은 그 이후에 극심한 불황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나아가 미국은 긴축을 시도할 때마다 위기에 처했고 독일과 일본은 긴축으로 나치즘과 군국주의의 길을 열었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금본위제와 프랑화를 지키려다 비극의 수렁에 빠졌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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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대안은 다소 급진적이지만 합리적이다. 위기를 만든 경제 엘리트와 집단에 책임을 물어 고통을 분담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이라는 방식을 통해 국가부채의 가장 큰 원인인 투자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당장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부실 은행 구제에 나서지 않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고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한 세금 체계와 구제금융으로 큰 이득을 누려온 기관 채권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마련해 국가부채를 줄이고, 재정정책과 공공지출을 유지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2013년에 나온 이 책은 지난해 말 번역돼 출간됐다. 시차는 있지만 국가부채에 대한 우려가 거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비춰 시의적절하다. 저자의 시각을 더욱 선명하게 확인하고 싶다면 결론에 이어 2014년에 덧붙인 후기 '지옥 속을 걷고 있음을 알게 됐다면, 출구를 찾아라'를 읽어보라. "(역사적으로) 긴축은 소득 분포상 최상위 계층에게 주어진 공짜 자산 보험인데, 이들 계층이 개인의 입장에서 행하는 합리적 행동(높은 투표 참여)이 집합적으로 봤을 때 자신들에게도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구제금융이라는 풋옵션 가격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비용은 긴축이 더 지속되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다."

긴축/마크 블라이스 지음/이유영 옮김/부키/2만2000원

긴축/마크 블라이스 지음/이유영 옮김/부키/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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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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