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포기할 목록을 늘려준 '9포청춘'의 봄…그래도 난, 희망을 놓고 여유를 그리워한다

[생각뉴스]'그래도'라는 섬이 있다…오늘 나를 위한 파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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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따스함을 머금은 바람이 분다. 곧 벚꽃이 만개할 테고, 사람들은 벚나무 아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2010년 새내기 시절 입학을 축하받는 회식 자리에서 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시 3학년이던 한 선배는 “1년이 한순간에 지나갔다”고 말했다. 봄이 되면 공원에 가서 맛있는 치킨을 먹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시원한 바다를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여름은 지나간다고 했다. 가을에는 단풍에 취해 산을 오르며 막걸리 한 잔으로 인생을 즐겼고, 눈이 오는 날에는 어린애처럼 눈싸움을 하면 다음 해가 온다고 했다.

다른 선배도 거들었다. 선배는 소주 한 잔을 순식간에 들이켜고는 “방학이 되면 여행을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학기 중에는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갈지 일정을 짜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자금을 모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행을 간 나라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필리핀에 갔을 때는 훅 끼치는 더위에 숨이 막혔다던가. 세세한 여행담을 털어놓는 그의 표정은 마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모험가처럼 늠름하고 당당했다.


그들의 말이 잔뜩 긴장해 있는 새내기를 안심시키려는 선의일 수도, 예의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허세 배틀의 일부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선배의 선배들이 전해준 꿈같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술자리에서 다시 게워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새내기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낭만은커녕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순간조차 본인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세상은 내가 포기할 것들에 대해 조목조목 정리해줬다. 새내기 때만 해도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란 말이 유행이더니, 지금은 9포 세대(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인간관계·희망·건강·외모)로 항목수가 늘었다. ‘헬조선’에서 자꾸만 높아져가는 취업 문턱을 넘기 위해 많은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압박감에 대외활동, 봉사활동, 해외연수를 간다. 취업을 위해 창업을 하고 책을 내는 이들까지 있다. 어려운 시절도 지나보면 낭만이고 추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절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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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래도(島)'라는 섬이 있다고 어떤 시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 봄날 그래도! 나는 그리워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벚꽃 아래 낭만을…. 따스한 바람이 귓불을 스치는 그 봄을…. 헐리우드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인 고(故) 로빈 월리엄스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봄은 ‘우리 파티해요’라고 말하는 자연의 속삭임이다.” 도저히 안되겠다. 오늘 치킨 사들고 한강공원으로 출동이다.


디지털뉴스본부 최누리 기자 asdwezx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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