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점을 이으면 직선이다. 기하학적으로 직선은 군더더기 없이 반듯하다. 최단거리다. 빠르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이런 상식이 뒤집힌다. 다시 점과 점이다. 첫 번째는 하늘에 떠 있는 매, 두 번째는 땅에 있는 쥐. 저 상식에 기대면, 매가 쥐를 낚아채기 위한 비행은 직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매의 비행은 곡선이다. 공중을 날다가 지상의 사냥감을 발견한 매는 필요한 만큼 고도를 확보한다. 이윽고 수직으로 급강하하면서 가속한다. 속도가 극에 달하는 순간 매의 비행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뀐다. 무려 300㎞. 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사냥감을 덮친다.
만약 매가 쥐를 향해 직선으로 비행한다면 속도는 붙지 않는다. 쥐는 도망갈 틈이 생긴다. 100% 실패다. 매의 사냥에서는 곡선이 최단거리다. 바로 '우회축적의 이론'이다. 처음은 느리지만 우회 과정을 통해 힘과 에너지를 축적하면 더 큰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
두 바퀴의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것도 곡선의 힘이다. 자전거가 왼쪽으로 넘어지려고 하면 핸들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균형을 잡는다. 자전거는 그렇게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향하면서 땅에 눕지 않는다. 직선으로 가는 듯하지만 실은 곡선을 거듭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과 저 앞에 놓인 목표점을 직선으로 그어놓고 최단거리의 성공을 꿈꿔본들, 때로는 궤도를 벗어나고 잠시 옆길로 새는 것이 인생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말처럼,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다.' 그러니 아이의 시험성적이 떨어졌다고 하늘이 무너질 듯 절망할 필요가 없다. '다음에는 잘할 거야' 하는 칭찬은 움츠러든 아이의 어깨를 일으켜 세운다. 사춘기에 자꾸 엇나가는 질풍노도의 이탈을 묵묵히 지켜봐주는 부모의 사랑과 인내는 결국 아이를 가정이라는 궤도로 복귀시킨다.
조직도 다르지 않다.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 직원들을 벼랑 끝까지 내모는 기업이 오래갈 리 없고, 눈앞의 실적을 위해 투자를 꺼리는 회사가 장수할 리 만무하다. 우격다짐으로 멱살을 잡아끄는 조직은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는 조직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1보 후퇴는 2보 전진을 위한 것이고, 개구리가 움츠리는 것은 도약하기 위해서다. 곡선의 힘이란 제자리에 멈춰서지 않고 힘차게 발을 내디딘다는 것, 그러다 길을 벗어났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궤도를 수정한다는 것, 그렇게 조금씩 전진한다는 것. 다른 말로 '능동적인 복원력'이랄까.
지난 4년의 박근혜 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정의의 상실'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소통의 부재'였다. 그사이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생떼같은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고 불통의 벽 앞에서 시름시름 앓아야 했다. 다행히 어둠 속에서도 양심의 촛불은 타올라 길을 비추었다. 탄핵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궤도 수정이었다. 다만 수정된 궤도 역시 직선일 리 없다. 조금은 오락가락하면서, 넘어질 듯 비틀거리면서. 그럼에도 그렇게 조금씩 우리 사회가 살맛 나는 세상에 가까워지는 것, 그것이 곡선의 힘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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