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행복하니? 우리 중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저 영화 대사일 뿐인데…. 영화를 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끄러움을 느낄 무렵, 주변 모습에 다시 눈시울을 적셨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갔던 남성 3명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16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멋쩍다. 평소 감정 표현에 서툴고, 눈물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투박한 사내들. 평소라면 닭똥집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였을 그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함께 영화관을 찾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영화는 2001년 10월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이다. 젊은 시절 밴드를 꿈꿨던 이들의 굴곡진 삶을 그렸다. 여자만 보면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오르간 연주자 정석(박원상 분), 거꾸로 여자 앞에서 숙맥인 드럼 연주자 강수(황정민 분), 처자식을 찾아 부산으로 떠난 색소폰 연주자 현구(오광록 분) 그리고 팀의 리더 성우(이얼 분)가 등장하는 내용이다.

그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성우는 고교 졸업 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에 내려간다. 와이키키라는 이름의 호텔에 일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밴드와 함께 귀향을 선택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이어지면서 뿔뿔이 흩어진다. 정석과 강수는 여자 문제로 다툰 뒤 결별한다. 성우는 첫사랑 인희(오지혜 분)를 오랜만에 만났지만, 남편과 헤어진 후 트럭 채소장사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성우의 스승인 음악학원 원장은 알코올 중독자가 돼 씁쓸한 인생의 말년을 보낸다.


젊은 시절 비틀스를 꿈꿨던 밴드 멤버들과 그 주변 인물들은 꿈을 이루기는커녕 하나같이 우울한 삶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밴드 멤버 가운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유일한 인물은 리더 성우다. 하지만 성우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 행복하니"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의 삶은 행복은커녕 참담 그 자체다.


룸살롱 노래 반주자로 살아가던 성우는 생존의 현실 앞에서 자존심을 내던진 지 오래다. 옷을 벗으라는 취객의 요구에 저항은커녕 발가벗은 상태에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연주하는 성우의 모습은 그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다.


어떤 평론가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일컬어 소주가 생각나게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울한 기운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마음을 잘 담아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게 어른들의 삶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 행복하니?" 누군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없이 소주 한 잔을 기울이거나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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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행복의 의미를 되묻지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알려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각자의 가슴에 쌓여 있는 감정의 응어리를 털어낼 수 있도록 그저 기다릴 뿐이다.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런 묵직한 기다림이 더 큰 위안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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