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혼술 열풍 일으킨 日 만화 거장
'고독한 미식가'로 남성 향수 자극한 다니구치 별세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세계적인 만화작가인 일본의 다니구치 지로(谷口治郞)가 11일 도쿄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9세. 이날 일본의 주요 매체들은 다니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다니구치는 어른, 특히 남성의 향수를 감성적으로 그렸다. 섬세한 스케치와 독특한 음영으로 돈벌이에 지친 아저씨들의 일상을 담아 그들의 마음에 쉼터를 제공했다. 쿠스미 마사유키(59)와 함께 작업한 '고독한 미식가'가 대표적이다. '식사하는 중년 남성' 이노가시라 고로(井之頭五郞)의 시선에 집중한다. 현실적인 그림체에 독백을 더해 식당의 분위기와 밥을 먹는다는 것을 문예적으로 풀어낸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음식을 먹는 이노가시라의 모습은 삶에 지친 일본인들 사이에서 '혼밥'ㆍ'혼술'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TV도쿄에서 드라마로 방송돼 높은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도 알려졌다.
1947년 돗토리 현에서 태어난 다니구치는 1971년 '목쉰 방'으로 만화계에 데뷔했다. 그의 작품들은 넓은 풍경부터 소도구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끈다. 주요 소재는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일상과 향수. '열네 살'ㆍ'아버지'ㆍ'도련님의 시대' 등은 아버지 세대를 회고하고, '겨울 동물원' 등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한다. 'K'ㆍ'신들의 봉우리'ㆍ'동토의 여행자' 등은 지나간 세대의 숨겨진 욕망을 위로한다. 그 매개체로는 주로 산과 같은 자연이나 밥과 같은 일상적 것들이 등장한다. 모두 치열하게 살아온 남자들과 마주하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독특한 세계관은 일본보다 서구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다니구치는 2005년 신들의 봉우리로 세계 최대 만화축제인 프랑스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화상을 차지했다. 2010년 이탈리아 만화축제 '루카코믹스 페스티벌'에서는 최고 영예인 만화거장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다.
다니구치는 만화를 그리는 과정을 자주 등반에 비유했다. "실패해도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고독한 작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죽을 때까지 만화를 그리면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바람처럼 소통은 계속 될 것이다. 정상에서 독자들을 만날 시간이 찾아왔을 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